-토니.

 

-......

 

-토니, 토니.

 

-엄마?

 

-그래. 

 

-엄마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그건 내가 할 말 아닐까? 넌 집을 떠난지 오래 되었잖니.

 

-다시 돌아왔어요. 아니, 여긴 딱히 고향도 아니잖아요. 그 옆동네죠.

 

-어쨌든 너도 여기가 옛 집이랑 가까우니까 돌아온 것 아니냐?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옆동네가 어디 한둘이에요? 어쨌든 놀라운 우연이네요.

 

-흠. 그렇구나. 

 

-좋아 보이시네요.

 

-그래. 그 포장된 꾸러미들을 보니 두 번째 결혼은 그럭저럭 잘 꾸려가고 있는 것 같아 기쁘구나.

 

-...세 번째예요. 

 

-오, 이런. 미안하구나.

 

-엄마, 설마 일부러 이러시는 건 아니죠?

 

-베쓰는 단지 새로운 결혼이라고만 말을 해줬을 뿐이다.

 

-......두 번째 결혼은 아주 짧았어요.

 

-첫 번째보다 더?

 

-엄마.

 

-그냥 물어본 것이잖니.

 

-그래서 속이 시원하세요? 그렇게 반대하던 결혼이 실패로 끝나서?

 

-오, 얘야. 난 네 엄마야. 아무리 반대했던 일이라고 해도 그런 걸로 승리감을 느끼지는 않는단다.

 

-결혼식에도 오지 않으셨잖아요.

 

-네가 내 참석을 원하지 않았잖니.

 

-무슨 말씀이세요? 전 그런 적 없어요.

 

-20년 전 일이라 내가 다 잊어버린 줄 아는 게냐? 

 

-엄마, 정말 괜찮으신 것 맞아요? 이제 연세도 꽤 있으신데...

 

-너야말로 왜 이러니? 내가 스테이시를 미워한다면서 축복하지 않는 이의 참석은 필요없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하, 그 이름도 일부러 꺼내시는 거겠죠. 

 

-토니.

 

-어쨌든 당시에 전 가족들의 전적인 지지와 축복을 바랐지만, 그렇다고 엄마더러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할 만큼 막돼먹게 굴진 않았다고요.

 

-이런, 이런. 베쓰에게 전화를 해봐야겠구나.

 

-그러세요, 제발. 누나는 잘 지낸대요?

 

-네가 직접 물어보지 그러니?

 

-제발 엄마, 그냥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는 거잖아요. 왜 이렇게 날카롭게 구세요?

 

-아까부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너도 그래 보이는구나.

 

-일단 여기 앞으로 오세요. 먼저 소포를 부치시라고요. 무거워 보여요.

 

-어머, 고맙다.

 

-후......

 

-그 한숨은 뭐니?

 

-그냥 나왔어요. 일일이 신경 안 쓰시면 좋잖아요.

 

-나도 그냥 물어본 거다.

 

-엄마는 정말......! 됐어요. 엄마 순서예요. 

 

-토니.

 

-네.

 

-소포를 부치고 나면 스펜서 부인과의 차 약속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는단다. 이 엄마랑 어디 따뜻한 데라도 들어가 있을 테냐?

 

-그래요. 그러세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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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ing

go and get it 2023. 7. 27. 16:03

 

 

지금 나는 내게 머문 역병이 떨어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과 별개로, 진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만 3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질병이 훨씬 더 큰 파도로 창궐할 적에도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품고 다니며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모두 잘 넘어갈 수 있었다(접촉 지인의 확진 등). 그런데 알 수 없는 경로로, 짐작키 어려운 사정으로 내 무구한 호흡기에도 녀석이 깃들어버렸다.

처음부터 몸이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흔하지 않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음의 여파로 치부했다. 그러던 것이 2박3일을 보내고 술기운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갔다고 생각될 즈음에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이때쯤에 이미 발열이 시작됐겠지만 느끼지 못했다. 내 몸은 실내에 머문 4시간여의 에어컨 바람 덕에 밖에 나왔을 땐 오한을 뱉어냈다. 몸속에 스민 냉기가 바깥 공기에서조차 중화되지 못해 오들오들 떨면서 집으로 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춥고 춥기만 해 냉방병을 의심했다. 그러던 것이 따뜻한 물을 몸 안에 집어넣고 긴팔 옷을 입고 있는 시간 동안 제 모습을 되찾아, 그때부터 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체온계로 재 보니 38도가 넘었다. 지난 몇 년, 아니 십 몇 년을 둘러 생각해봐도 38도가 넘었던 적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호흡기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다. (내 대부분의 신체문제는 소화기로부터 비롯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자는 90% 이상의 가능성으로 역병일 거라 말했다. 아니면 유행하는 독감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냉기를 못 이긴 신체의 반작용일 수도 있었다. 그 밤은 물수건으로 이마를 식히며 넘겼다. 

다음 날 아침 열을 재보니 거의 1도가 내려 37도 초반을 기록했다. 전염병 계열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갈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래서 자가키트를 꺼낼 생각이 든 거였다. 여전히 몸은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자가키트 시약창은 너무 빠르게 내가 양성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현실이었다. 내가 역병에 걸렸다. 나는 고양이세수를 하고 캡모자를 눌러 쓴 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똑같은 키트로 단번에 내 역병이 재확인되었다. 이렇게 빨리 드러나는 걸 보니 전염성이 가장 강할 시기라고 했다. 나는 증상이 경미했지만 만약 심해질 경우를 대비해 약을 3일치 받아왔다. 단순한 열이 아니라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복용하라고 했다. 

나는 나와 접촉한 이들에게 내 확진을 알리고 일단 상비약을 먹었다. 열이 다시 조금 오르기 시작했다. 발열 외에 다른 증상은 없었다. 친구들에게 실제 경험편을 잔뜩 듣고 이것저것 준비했다. 몸을 움직일 만한 것만으로도 심한 편은 아니라고 했다. 열 기운 탓에 몸이 붕뜬 느낌이 들었다. 시간맞춰 약을 먹었다. 하루의 곳곳에서 잠을 청했다. 친구가 죽을 배달시켜 주었다. 설거지는 다음날로 미루었다. 열은 여전히 오락가락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목이 시원했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3일째 아침, 목이 불편했다. 듣기로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인후통이 시작된 건지 긴장이 됐다. 처방약을 먹어야 할 시기라는 걸 알았다. 요사이 비정상적인 기상을 많이 하는데, 틈틈이 잠을 보충하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남은 죽을 데워먹고 처방약을 삼켰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좀 더 몸에 맞는 약이라는 느낌이었다. 에어컨을 껐다켰다 하면서, 오렌지주스나 아이스림 따위로 목을 달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목의 아픔은 잦아들었다. 밥먹은지 3시간이 지나 점심약을 먹고 낮잠을 잤다. 몸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호흡기질환이 사흘이나 내 몸에 머문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지금은 오후, 두어시간 뒤 저녁약을 먹기 위해 죽을 먹을 것이다.

내일은 거동이 용이하면 좋겠다. 할 일이 많다. 말인즉 증상이 거의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린다. 역병이 떠나기를 기다린다. 작은 불편함부터 큰 불편함까지 감당할 게 많다.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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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eaning lady

go and get it 2023. 7. 26. 20:02

 

 

"선생님."

처음 그녀는 그것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기, 선생님."

하지만 주위에는 그녀와 그 목소리의 주인공 밖에 없었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네?"

그녀는 놀란 토끼눈을 뜨고 상대방에게 반응했다. 그 표정은 그녀의 원래 나이를 잠시나마 드러내주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게 옷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는 그녀였다.

"혹시 이 건물에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상대방 여자는 여전히 극존칭을 쓰며 파란색 유니폼에 청소도구를 손에 든 채 피로한 발걸음을 질질 끌고 있던 그녀를 멈춰세웠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화장실의 위치라면 건물의 어느 방향에서도 정확히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지만, 그녀를 향한 드문 존칭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는 그녀 자신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서? 대부분 "아줌마"라 호칭되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녀는 왜 말끔하고 세련된 투피스를 입고 고급스러운 진주목걸이를 두른 여자가 자신을 기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일단 서두를 꺼냈으나 목소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네?"

이번엔 여자가 의문을 품을 차례였다.

"왜, 절 선생님이라고 부르시죠? 저는 선생님이 아닌데요."

순수한 궁금증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는지 목소리가 껄끄럽게 튀어나갔다.

"그럼 뭐라고 부르죠?"

여자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반문했다. 말문이 막힌 그녀는 쓰레받기를 힘주어 다시 잡았다. 

"그냥..."

그녀는 여전히 자신하지 못했다.

"네?"

"그냥 남들처럼 하세요. 선생이니 뭐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선생님이 대단한 호칭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결례를 범했나 보네요. 사과드립니다."

여자는 막힘없이 대꾸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더욱더 무엇에 대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부아가 치밀었다. 여자가 자신을 능멸하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녀와 비슷한 나이일 여자가 자신의 계급을 그녀 앞에서 과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만!"

"..."

"그만 좀 하라고!"

그녀의 사나운 외침에 여자는 드디어 분위기를 파악한듯 걸음을 서둘러 출입구로 향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자는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출입구 앞에서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고 허리를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인도 위에 발을 내디디곤 드디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건물 복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아줌마, 여기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떡해요? 휴게실 다 만들어줬잖아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왜 이용을 안 하느냐고, 내 말은."

그녀는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지지대 삼아 몸에 힘을 주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출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그녀의 발치 앞에서 끊어지는 모습을 그녀는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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