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사와의 술자리가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상사는 꼰대인 척 하지 않는 데 무척 신경을 쓰는 꼰대였다. 꼰대인 척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점은 인정해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가끔 있는 이런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본심을 드러내는 꼴을 보면 꼰대가 꼰대인 척 안해 봐야 결국 꼰대지, 라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그리고 어째서 상사가 그에게 그런 말들을 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상사가 보기에 그가 동일한 성격의 꼰대스러움을 지녔다고 판단할 무슨 계기를 제공헸던 게 아닌지 생각하면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는 꼰대라면 질색이다.
그날도 그랬다. 요즘 젊은이들 감성이라며 호숫가의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상사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출생률을 높이려면 여성가족부에서 여성부를 없애고 그 예산으로 아이를 낳는 가정에 일정 기간 현금을 쥐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는 기가 찼다. 둘러앉은 이들 중 여성이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며 동의를 구하는 상사의 뻔뻔함과 그 의견의 무식함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반박할 수는 없지만 지지해주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래도 네네 거리지 말고 무슨 말이든 했어야 한다고 자책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이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려면 말이야.
-네.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을 떼고 가족부로 통합을 시켜서 말이야.
-......네.
-아이 낳는 집안에 돈을 쥐어줘야 돼 돈을.
-음.
-다달이 백만원씩 줘봐라. 애를 안 낳겠어? 다 낳지. 돈을 줘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돈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뭐라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서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문제를 먼저 손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건-
-그러려면 여성부가 반드시 필요하고요. 아이를 낳아도 커리어에 손상이 가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아이 낳을 마음도 들겠죠.
-현실을 모르는구먼. 여자들은 말이에요, 직장에 그렇게 목숨걸고 일하지 않아요. 그렇게 태어났거든.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는 발언이십니다. 부장님이야말로 현실을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어디서 상사한테 감히.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