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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go and get it 2020. 8. 30. 16:56

 

그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몇 개월이 흐른다

 

그의 BMI 지수는 16으로 떨어졌고, 스스로 매일 느낄 만큼 체력이 약해졌고, 성인이 된 이후 이토록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나,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게 금주의 날들이 계속되고, 식사량도 퍽 줄어버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집을 청소한다. 정리하고, 걸레질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매일 악몽을 꾸고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활자에 집중하지 못해 책을 잘 읽지 못한다

 

그는 뒤늦게야 받게 된 재난지원카드로 새 안경을 맞춘다. 쇠약해진 몸에 식욕을 찾아준 sour jelly와 땅콩과 아몬드가 제대로 씹히는 초코바를 잔뜩 사들인다. 사소한 몸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 치아 정기 검진, 눈의 염증 같은 - 병원에 가고 약을 지을 때도 1인 가구라 두둑하게 지급된 지원금을 쓴다. 마스크도 사고, 영양제를 먹기로 결심한다. 영양제들이 그렇게 비싸다는 사실을 처음 안다

 

 

그리고 수시로 잠에 든다. 오전이든 오후든, 졸리면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다

 

 

몇달 동안 조금도 내키지 않았던 쇼핑을 한다. 여름옷을 사고, 아직 늦봄에 머문듯한 공기를 긴 옷들로 버텨 새옷들이 행거에서 조금씩 시드는 것을 바라본다

 

 

그는 제 힘으로 가능한 일들을 곱씹다가 어느날 이른 아침 - 그는 아침 대여섯시면 눈을 뜬다 -  창을 열고 문장을 써본다

 

문장이 써지길래 계속 써본다

 

종일 하루 세 번 먹는 약에 취해 있는 것 같다. 그는 예전보다 웃지 않고, 예전보다 울지 않는다. 특별히 시험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저녁 약을 이틀 연속 거른 다음 날, 세상의 모든 불안이 그를 잠식해온다. 실수가, 사고가, 불운이 그를 후려칠 것 같은 기분 속에 새 약을 먹는다. 그는 다시 두려움을 감춘다. 그는 약에 의존하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상한 암시에 걸리는 것을 즐겨온 그는, 쇠약해진 몸을 덮치는 작은 불운들을 노려본다. 나의 기가 약해진 틈으로 깜찍한 잡것들이 그를 흔든다 생각해본다. 그럴 때면 눈을 부릅뜨고 웃기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일상에 필요한 약간의 노동을 하고 약을 먹고, 잠을 설친다

 

 

 

라는 문장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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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anda forever

loafing 2020. 8. 29. 23:45

 

 

 

블랙팬서 chadwick boseman의 사망 소식에 가슴이 아프다. 칼로 긋는 것 같은 갑작스런 이별

 

선한 눈빛과 품위를 지닌, 그가 가진 슈퍼히어로의 자질보다 빛났던 왕의 자격

 

나는 그를 재키로빈슨 전기영화 <42>로 처음 접했다. 이미 삼십대 중후반이었는데 분명히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이십대 초반의 배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천진함과 맑음, 청춘 또는 역사의 상처와 빛 속에 오롯이 서 있었던 찬란함 

 

 

참으로 특별한 사람이 떠난 느낌이다. 슬프고 애가 타고 울음이 터진다

 

 

rest in power,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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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go and get it 2020. 8. 28. 15:00

 

 

그렇게 그는 인내의 밤을 버티고 아침을 맞이해

 

그의 텅 빈 위장은 무엇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그는 빨리 병원에 가고 싶을 뿐이야

 

그는 지정된 시간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해. 오전이라 고려한 사항들이 그를 방해하지 않았거든

 

물론 그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

 

줄곧 접수가 시작되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에게 일어난 작은 해프닝은 이런 것

 

접수처에 갈 게 아니라 검사실로 미리 가 있어야 했는데, 그는 어제 진료 후 안내를 해준 간호사의 말, 즉 접수를 하고 검사실로 올라가면 된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지. 생각해 보면 8시 5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9시에 오픈된 접수대를 기다린 건 철두철미한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일이야. 말하자면, 그런 일일함에 신경을 기울일 에너지가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어

 

뒤늦게 검사실에서 전화를 걸어왔단 사실을 알고, 급히 다른 층으로 향한 그는 이미 그의 다음 차례 환자가 검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지. 그는 드물에 큰 짜증이 났어.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입 안으로 무엇도 집어넣지 못한 상태로 일찌감치 병원에 도착했는데, 간호사의 잘못된 인도로 30분을 밀리게 됐으니 말이야. 혼란스럽게 부서진 그의 머릿속 내지 가슴속 상태로 미루어, 그가 다소 큰 소리로 왜 가이드를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신경질을 부린 것은 한번 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어. 말했듯, 그는 아무런 여유가 없는 상태거든

 

 

다행인지 무언지, 다른 환자의 검사가 9시 전에 시작된 덕에 그는 예상보다 빠른 콜을 받게 돼. 그리고 그는 드디어 뇌 MRI를 찍지. 꽉 채운 30분이 걸린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어. 물론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바라지만, 이것이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납득하고 있거든. 30분이든 1시간이든, 이 과정 없이 그는 결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 응당 거치겠다는 마음인 거지

 

 

MRI는 쉽지 않았어. 좁고 길고 흰 통 안에 빨려들어간 그는,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완전히 고정된 상태로 눈을 감은 그는, 첫 5분이 지난 뒤 답답함을 거쳐 새로운 불안을 얻게 되지. 폐소공포증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견디기 어려운 공포, 호흡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그를 괴롭혀. 이상한 일이야. 그는 불안을 제거하는 과정, 그 모든 과정은 공포 없이, 비교적 용감하게 치뤄내는 편이거든. 30분이라는 시간의 압박 때문일까. 어쨌든 왜 이러는지 생각할 시간은 없지. 어떻게든 쿵쿵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이제 20여분이 남았을 시간을 차분히 견뎌야 하지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인지, 앞으로도 15분은 남았다고 느낀 시점에 검사는 끝이 나.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는 안도는 0.5초 정도 그의 몸에 머물고 사라지지. 그는 어제의 진료실 앞에서 긴장을 풀려고 애쓰며 차례를 기다려. 이윽고 그의 이름이 호명되고 그는 후다닥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무얼 얻었겠어?

 

그의 뇌는, 그의 뇌 혈관은 완벽하게 멀쩡하지. 이상한 곳도, 조금이라도 좁아진 곳도 하나 없이 깨끗하지. 의사는 이제 걱정 없이 돌아갈 수 있겠냐고 가볍게 말하지. 여전히 무료한 표정으로 말이야.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재빨리 병원을 나오지. 그는 다시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며,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그는 밥을 먹고, 가족의 짧은 외출에 따라나서기까지 해. 그에게 뇌졸중의 전조 따위는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거야. 쉽게도 불안감을 그러쥐는, 꼼짝없이 매혹되는 그의 유약한 정신이 또다시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친 것뿐이지

 

 

 

이제 그는 잠에 들어야 하고, 제때 배고픔을 느껴야 하며, 시간을 때울 때 열중하곤 하는 폰 게임의 하트가 차는 시간에 맞춰 게임을 해야 하지. 책을 읽고, 계획해둔 일에 착수해야 하지. 늘 그의 불안을 걱정하던 친구에게 괜찮다고 말해야 하지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괜찮지 않았거든

 

 

그는 당황하지. 이전의 경험대로라면, 그는 몸상태에 의심이 들 때 가장 위중한 병을 가정하고 병원을 전전한 뒤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지

 

문제는 그 마음의 안정이 그에게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원래도 깊이 잠기지 못하는 그의 수면은 두근대는 심장 탓에 밤새 너울거리고, 억지로 들이미는 음식은 모래알 같았으며, 5분도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지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어. 이미 말한 바 있듯이, 그의 머릿속에 잠시 숨어 있던 "다음 차례"의 전투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 그게 무엇일지 잠시 짐작해 보든지

 

 

 

 

 

그것은 그가 너무 많은 병원을 거쳐왔다는 사실이야. 전염병 창궐의 시대에, 다니던 병원도 그만두는 시국에, 그는 이미 병원 네 군데를 다녀왔고, 그 중 두 곳은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응급실이었지

 

 

 

그래서 시작된 거야. 그가 열을 재고, 가족들과 밥을 따로 먹는 시기가. 이번 그의 두려움은, 그가 전염병에 노출되는 게 아니었어. 자신은 전염병에 걸리든 말든, 걸려서 죽든 말든, 가족에게만은 옮기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어. 그는 섬에서 나와 혼자 사는 집에 갈 수도 있었어. 물론 그땐 혼자 지내는 게 불가능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 옵션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말뚝처럼 단단하지

 

 

그는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려오지. 가족이 나 때문에 어떻게 된다면, 그는 스스로를 사형시킬 것이었어. 자살이 아니야. 사형이어야 하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며칠이 걸린다고 하니 그만큼 기다려보아야 한다고 그의 이성이 간신히 말을 했어. 그때라도 그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겠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어. 혼자 되는 순간 그는 바로 쓰러질 것이었어. 쓰러지든 말든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먹을 수 없었어. 몹시 쇠약해진 그의 정신은, 어찌할 바를 몰라 가늘게 가늘게 찢어지고 있었지

 

 

그는 일주일을 생각해. 일주일 동안 열이 나지 않고 목이 아프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그동안 화장실도 식사도 따로 하기로 결심하지. 그의 두려움은, 그의 목이 간질대고 있다는 데서부터 비롯되었으니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그는 이전에도 자주 이런 일을 경험했지만, 그런 게 이 시점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건 잘 알 만하지. 그는 뜨거운 물을 수시로 마시고, 수시로 열을 재지. 가족이 그의 강박을 지적할 땐 씩 웃기만 하지.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잔뜩 걱정시키고 있으면서 걱정을 덜 작정으로 말이야

 

 

 

 

그는 또다시, 빨리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지. 밥을 삼킬 수 없어 무자비하게 살이 내리고 있었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지. 그는 어쨌든 언젠가는 끝날 그 날을 기다리며, 체온계와 알콜스왑을 손에 꼭 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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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go and get it 2020. 8. 23. 16:33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을 겪는 게 처음은 아니다

 

그는 그 과정이 언젠가 마무리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는 살 수 없을 테고, 살 수 없음 역시 또 다른 마무리가 될 터이니

 

 

그는 그것이 살면서 치르는 일종의 세금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억울하지는 않다. 대부분 그가 자초한 일이고, 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그의 잠재의식 내지 신경전달물질이 벌인 일일 가능성이 높으니 어쨌든 그에게 속한 것들이다. 그 연원을 찾는 게 중요할까? 그 연원을 찾아내더라도, 세금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냥 그 시간이나 과정이 길지 않기를, 그가 참아낼 수 있을 만큼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매초 매분을 버틴다. 그러면서도, 이대로 죽어도 괜찮지 않나, 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다. 그는 현재의 삶에 미련이 없고 아쉬움도 없다. 가족을 향한 우려만이 그가 급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공포는 삶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가 지니기에는 과하지 아니한가

 

 

그는 세상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자비하고 거칠며, 그것을 버텨내기에 스스로가 지나치게 유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죽음에 매혹된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하는 마음 자체가 삶에 대한 욕망임을 그는 아주 최근에 알게 된다. 그는 자주 눈물 흘리고 맨몸에 그어진 상처를 자주 드러내 보였지만, 그것과 죽음의 연결고리는 멀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트리거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날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라는 말은 실제 죽음을 행하는 일과는 매우 다르다. 그 마음이 의식의 모든 것이 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어떤 일, 또는 사건, 말 등이 무엇인지 그는 생각해본다. 그리고 실제 죽음을 행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상상만으로 형상화하는 데 한게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어쨌든 그가 죽음의 궤적을 한발 한발 좇을 때 언제나 거기서 주춤대다 멈춘다. 결국 그의 머릿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죽음은 한번도 죽음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들의 것만큼이나 피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여러 병원을 거쳐오게 했던 그 공포, 죽음을 향한 공포는 평범하고 말쑥하고 흔한 것이다. 죽음을 머릿속에 지니고 있다고, 그 공포가 타인의 공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 또한, 그는 인정해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이런 식의 죽음"이 싫은 것이라고 말을 보태보아야 한다. "급사"가 싫다고,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어버리는 게 싫은 거라고 말해야 한다. 그게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삶에 남은 미련이나, 아쉬움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욕망의 존재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그 순간의 그에게 그 사유는 끊임없이 떠올랐지만 해결을 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몸에 남은 미약한 에너지가 그 사유를 진행시키는 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MRI를 찍어야 했고, 그 결과로 편해지는 과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MRI가 보여줄 흠잡을 곳 없는 머릿속이 그에게 안정을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을,

그날 밤의 그는 꼭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명민하고 재바른 그의 뇌세포가 이미 그게 아님을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지만, 그 경고는 그 순간의 그에게는 너무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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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16. 15:50

 

기억해?

 

 

그의 뇌는 MRI를 잊지 않고 있었어.

다음 날, 그는 밥을 잘 삼키지 못했어. 왜냐하면 팔다리에, 왼쪽에, 사이드에 다시 미세한 저림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 그게 실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는 그제야 가족에게 솔직히 실은, 

이렇게 급히 날아온 까닭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충 말해

그래서 응급실에 다녀와야겠다고, 가서 MRI를 찍고 편해져야겠다고 말이야

그의 가족은 그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야

가족은 별 말 없이 다른 가족에게 차로 그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주라고 말하지

 

 

그는 MRI가 필요했을 뿐이야. 거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게 확실하지만, 그 '거의'를 제거하는 게 그의 삶의 키워드인지도 모르겠어

 

 

3월은 아직 추웠어. 섬처럼 아이러니하고 아름다운 볕따윈 없었어

전염병으로 방역과 예방이 강화된 대학병원 응급실의 입구는 실내에 차려져 있지 않았어

추위에 떨며 그는 지시한 대로 작성할 것을 작성하고 무작정 기다렸지

비닐로 천막을 만들고 히터를 가져다둔, 사람 한 두명이 왔다갔다 하는 그 풍경은 전염병으로 초토화된 현장을 묘사하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렸지

 

오랜 기다림 끝에 그는 선별진료소로 가게 됐어. 그는 알러지성 비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늘 콧물을 흘려대거든. 아마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좀 더 약게 굴었어야 했다고, 이게 전염병의 증상일 리 없는데 너무 솔직히 적어버려서, 들어오고 싶지 않은 선별진료소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

 

그는 엑스레이를 찍었고, 그의 폐가 클리어되어 본격적인 응급실로 배치되기까지 한 시간여를 그 비닐에 머물러야 했지

 

드디어 입장을 허락받은 그는 그처럼 선별진료소를 거쳐온, 즉 전염병에 걸리진 않았지만 호흡기 증상을 지닌 이들이 누워 있는 코호트 격리된 방에 배치돼. 그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

 

뭐, 어떻게 해도 그가 기분 좋아질 리는 없었겠지만

 

 

그를 본 전공의에게 그는 이전날부터의 정황을 설명하고, MRI를 찍고 싶다고 말해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어

 

말하자면 이런 것이지. 그는 응급실로 찾아온 환자고, MRI를 찍으려면 CT촬영을 먼저 해야 하는데,  CT 결과를 보고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MRI 촬영 여부를 결정한다고. 그게 응급실의 프로토콜이라고. 그가 이틀 전에 깨끗한 뇌 CT 결과를 확인한 일은 이곳 의사들 눈에 그 사진을 들이밀기 전엔 소용없는 일이지. 거긴 "응급실"이니까

 

 

그렇다면 CT를 찍어야 하지. 피 검사도 다시 해야 되고. 의사도 별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응급실에서 MRI 오더를 내릴 순 없다고 말했어.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그 순간에도 자신이 미친 인간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대답했어

 

 

커다란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분주했고, 전염병의 창궐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됐어. 그 덕분이었지. 그가 이틀 만에 뇌에 CT 촬영을 하는 일 자체를 회의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촬영 후의 그 간질병 같던 진저리가 그를 두렵게 했어. 일종의 부작용이라 말할 수 있을 테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냥 생각해도, 이틀 전에 깨끗했던 CT 상의 혈관에 무언가 생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니까. 그는 CT를 찍지 않는 게 몹시 피로한 자신의 몸에도 더 나은 일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 이 모든 게 과정이 느릿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나중에 생각해

 

 

그는 전공의를 불러서, CT를 찍고 싶지 않으니 나가게 해달라고 말해. 그렇다고 그가 MRI를 포기했다는 말은 물론 아니야. MRI를 다루는 2차 병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으니까. 의사 역시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실제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퇴원 조치를 밟아주지

 

 

그는 유난히 쌀쌀했던 그 날의 오후, 병원 로비로 나와. 가족이 그를 데리러 오고 있지. 그는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 속으로는 몹시 걱정할 테지만 티를 내지 않는 가족을 돌볼 마음의 여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게 괴로워.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에 속하거든, 그에게는. 그것이 아마 그가 지닌 병의 근본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

 

 

그는 제법 큰 신경외과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폰 검색으로 알아내. 지체없이 그곳으로 향하고, 입구에서 신상정보를 기록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인지 모를 손소독을 하고, 비치돼 있는 혈압측정기로 혈압을 재봤어

 

 

혈압 측정 결과는 놀라웠어. 무려 140에 가까운 숫자를 보게 된 거야. 너무 놀라서, 그는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한번 측정해. 결과는 다르지 않았고. 그의 평소 혈압은 정상범위지만 다소 낮은 90-60이거든. 그도 이성으로는 알고 있겠지. 이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떨어대며 긴장하고 있는데 혈압이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상승의 폭이 자연스러움의 범주에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 그는 의사가 아니니까

 

 

 

그렇게 불안에 떨며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신경외과 전문의와 마주하게 돼. 의사에게 쏟아내듯 지금 상황을 설명한 그는, 뇌 전문 의사가 의례 할법한 수검사를 받아. 손을 움직여보고, 다리를 움직여보고, 작은 나무망치로 두드리는 그런 것들 말이야. 무료하고 사무적인 얼굴의 의사는, 시원스레 MRI를 처방해주어. 이상은 없어 보이지만, 마음의 불안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하겠다고, 마치 이런 환자가 그가 처음이 아닌 게 당연한 일 아니겠냐고 전달하듯 말이야

 

 

그가 다소 늦은 오후에 방문한 덕에 당일 MRI 검사는 마감됐다 해서, 다음 날 가장 이른 시간에 얘약을 마치고 그는 병원을 나와서 가족의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오며 그는 자신이 며칠 사이 너무 많은 병원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어쨌든 MRI가 당시의 그에게는 꼭 필요한 검사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급적 가족들과 멀리 해. 그게 소용이 있는 일이 아닐지라도, 그런 제스처밖에 그는 취할 수 없었어. 그리고 빨리 다음날이 오길 바라면서, 빨리 검사를 마무리하고 우연히 얻게 된 "뇌졸중의 가능성"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주 작고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방을 오갔어. 식사나 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지, 그에겐

 

 

그는 다음 날 집을 나설 예정인 8시 20분까지 잠을 자고 싶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지. 그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의식이 깨어있기를 딱히 바라는 건 아니거든. 의식이 깨어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는 그냥, 그 순간 그는,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지금까지 그가 수없이 품었던, 세상과의 이별을 향한 끌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곳이 그에게 입히는 상처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게 힘겨워 자주 죽음을 꿈꿔 왔는데, 왜 이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 모순보다, MRI가 그의 머리속을 좀더 차지하고 있었지

 

 

그는 이후에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건 아주 긴 사유와 큰 고통이 필요한 과정이 될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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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5. 08:20

 

"예...에?"

 

그는 놀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잠깐 이 상황이 시트콤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불편함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그는 전공의로부터 본인의 증상이 "뇌졸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동안 응급실에 몇번 들어간 적 있는 그에게는 생전 꿈도 꿔본 적 없는 피드백. 그는 심장 이상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거하고자 가장 큰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달려온 것이고 혹 그런 증상이 있으면 심장검사를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면서 서술을 한 것뿐인데

 

갑자기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그 이유를 의사는 친절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응급실에서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뇌졸중과 심근경색이라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또는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아마 그 때였을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 일종의 안정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는 더 큰 불안, 상상해본 적 없는 불안을 떠안은 채 간호사가 지정해준 침상에 짐을 내리고 커튼을 두른 채 환자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드러눕는다. 간호사와 의사가 차례로 찾아와 증상을 다시 물어보고 채혈을 하고 혈압을 잰다. 사실 그가 증상이라 말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인지 그가 의심하고 있는 것들이다. 손끝과 팔, 정강이에 저린 느낌이 있지만 그는 그게 불안에서 비롯된 느낌인지, 실제 증상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말은 응급실에서 할 수 없다. 이미 또 다른 질병, 머리와 관련된 질병의 가능성이 그의 품 안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낙담에 빠져있지만 병원이라 걱정을 덜 수 있다. 그게 다이던 시절은 이미 끝나버렸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신경과 교수에게 콜이 간 것이 그의 귀에 들리고, 의논 끝에 그에게 CT촬영 진단이 내려진다. 그는 예전에 CT를 찍어본 적이 있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조영제의 느낌이 좀 묘했다는 것 정도만이 기억난다. 어쨌든 그때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기에 그는 순순히 CT촬영에 동의한다. 다시 한번 심전도도 하고, 또 혈액검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는 무표정으로 잠자코 누워 있었지만, 뇌의 질병이 입에 오르내린 것이 그의 저림 증상이 한쪽, 즉 왼쪽에만 나타났기 떄문이라는 사실을 이런저런 대화로부터 캐치한다

 

그런 거였군, 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느낌이든 뭐든 그게 사실이기도 해서 그는 머리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한다. 아니, 이제 그런 얘기를 들은 이상, 머리 검사 없이 병원을 빠져나갈 수는 없게 됐다. 그는 새로운 질병을 얻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조영제를 맞고 CT촬영을 한다. 옛 기억과 달리 온 몸의 혈관이 끓어오르듯 뜨겁다. 검사는 금방 끝났고, 다시 응급실의 병상으로 돌아오는 그의 몸이 진저리를 친다. "추우세요?" 라고 묻지만, 추운듯도 싶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그의 몸이 반사작용을 일으키듯 의지와 상관없이 진저리쳐지고 있다. 마치 간질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제멋대로 덜덜덜거리고 우두두두,후루루룩 움직인다. 그는 조영제의 부작용인가 싶어 의료진에 묻지만 그런 종류의 부작용은 드물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5분 가량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데 움직여지는 몸을 제어하지 못해 또다른 기억을 각인한다. 나는 CT는 안될지도 모르겠다

 

 

몸이 진정되고 그는 두어 시간 걸릴 거라는 말에 수액을 꽂은 채 누워 있다. 병실을 둘러보면 나이든 노인들이 보호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한순간 이 모든 게 재미없는 농담같고, 그는 그 순간의 느낌들이 싫다. 오후부터 밤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촌각을 다투는 급성질환이라면 벌써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는 늘 죽어도 상관없고 여한도 미련도 없다고 여겨왔지만 스스로 상정한 죽음의 가능성 앞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그것이 급사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인지 판단하기를 포기한다

 

 

 

두 시간이 한참 안 된 시점, 신경과 교수가 직접 그의 병상을 찾아온다. 그는 친절한 말투로 CT상 혈관엔 아무 문제도 보이지 않고, 심전도도 피검사도 이상 없다고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CT는 미세한 혈관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미세한 혈관까지 완전히 체크하려면 MRI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허나 자신의 소견으로는 굳이 MRI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젊은 사람들이 팔다리 저림 증세로 외래를 많이 보러 온다고 말한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면 MRI를 찍는 걸 말리지는 않겠다고 덧붙인다

 

그는 일단 자신이 우려했던 심장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을 얻는다. 전문의의 소견에 따르는 게 합리적인 일이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감추기보다 말해버린 그 MRI, 그것을 찍으면 그는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그가 한 것은 당시가 아니다. 몇년 같은 며칠 후, 후회하며 그가 한 생각이고, 신경과 교수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는 그럼 퇴원하겠다고 말한다. 신경과 교수는 외래를 잡아두겠으니, 그 저림을 치료해보자고 권한다. 그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저런 사항을 다시 알려주러 온 전공의는 이런 증상이 이전에 있었다고 미리 말을 해주었다면 CT를 찍을 필요도 없었을 거라고 조금 불만인듯 말한다. 그는 약한 정강이 저림 증상 때문에 그의 동네에 있는, 그를 최초에 진료해준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말했듯이 그는 심장의 이상없음을 확인하러 온 것이기에 , 그런데 뜻밖에 뇌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기에 위의 얘기가 관련있는 얘기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퇴원을 하면서부터 그의 머리에는 한 글자만이 떠돈다. MRI. 그는 그것을 받았어야 했다. 받고 싶기도 했다. 아마 그는 그 순간, 전문의의 판단을 믿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종일 마음을 긁어대던 거친 불안으로부터 잠시라도 해방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응급실 문을 나서고 이미 늦은 시각, 택시 한대도 줄서 있지 않은 로비로 나서며 불안은 다시 무겁게 그의 가슴과 머리를 내리누른다

 

 

그는 택시를 불러 타고 삼의 숙소로 돌아온다. 그는 온 방의 불을 켜놓고 가방을 펼친다. 팔 하나 들어올릴 힘이 없다. 그래도 불안만은, 가슴뜀만은, 지치는 법 없이 그의 온몸을 안쪽에서부터 구석구석 먹어치운다. 그는 잠에 들 자신이 없다. 의지와 달리 몹시 피곤했던 하루였던지라 눈이 감기고 있지만, 잠에 들면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다. 자면서는 몸의 어떤 증상도 느낄 수 없으니 오늘 하루 그랬던 것처럼 병원에 달려가지도 못한다. 그는 잠들면 깨어나지 못하리란 확신에 지친 몸을 이불 속에 들이밀면서도 심장에 손을 얹은 채 하루만 버텨 달라고 어른다. 단 몇 시간이면 된다. 짐은 대충 싸고, 그를 구원할 이들이 있는 육지로 되돌아가는 과정까지만 몸이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는 불을 켜둔 채 새우잠에 든다. 유쾌한 예능프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다 깨다, 깨면 살았구나, 느끼며 끊어끊어 두어 시간을 잔다

 

 

새벽에 일어나버린 그는 못 싼 짐을 제법 이것저것 챙기며 밤새 죽어버리지 않았음에 조금의 여유를 찾는다.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면 그의 쓰러짐에 대처해줄 사람이 있는 거니까. 평소 여행 짐싸기의 달인이라고까지 말할 만한 그의 꼼꼼함에 할애할 에너지가 없어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짐을 싸고, 당이 떨어지면 그것대로 또 문제가 되니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을 입에 밀어넣고 택시를 부른다. 공항, 전염병의 시대에 온갖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는 공항에서 그는 안정감을 느낀다. 마스크는 완벽하게 착용하고 손소독제도 보이는 대로 바른다. 갑자기 예약한 탓에 비행기의 맨 뒷자락에 앉은 그는 창문쪽으로 시선을 둔 채 사람들을 외면한다

 

드디어 그는 육지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는 늘어지면서 새로운 기분을 만끽한다. 공항을 거쳐온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대로 혼자 사는 집으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불가능하다. 그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씻기 전에는 만지지 말라고 말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는 밥을 먹는다. 제법 많이 먹는다. 같이 먹어도 되는 것일까, 생각한다. 일주일 동안 주의하자고 마음먹는다. 몸에서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는다. 편하게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점이 진짜 전투의 서막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잠깐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만은 그저,  육지로 돌아온 그 날만은 이루지 못했던 잠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을 내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하루 잠을 청한 그 다음 날, 그는 홀연히 전장으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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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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