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ght days a week

heart &soul 2015. 5. 19. 18:50

벌써 2주가 더 지나가 버렸다


여기저기서 몇 번이고 밝힌대로 내게 비틀즈는 특별하다. 지금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비틀즈가 아니었더라도 음악을 들었을 테고 음악에 빠졌을 테고 그로 인해 삶이 바뀌어겠지만 그 시작이 비틀즈였다는 것조차 특별했다고 기억한다


지난 해에 공연이 예고되고 티케팅을 하면서 영혼이 바닥까지 털렸더랬다. 중딩 시절부터 콘서트를 다녔고 온갖 내한 공연과 온갖 티케팅의 전설의 현장에 있었었지만 2014 폴 매카트니 티케팅은 빌어먹을 현대카드의 서버 폭발로 뼈에 각인되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그날 4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새로고침을 클릭하면서 여러가지 한계를 맛봤다. 결국 폰으로 성공하고 ㅋㅋ 밤에 몸살이 났다. 새벽까지 씩씩대다 열에 들떠 잠들었었지


그런 공연이 취소되었으니 허탈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취소가 확정된 날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취하지도 않아 계속 들이붓다 쓰린 속 부여잡고 밤을 헤맸다. 잔인하기 이를데 없었던 2014년의 봄이었지


2015 공연이 예고되고 숨돌리기 전에 티케팅 공지가 뜨고 지난해의 교훈으로 서버가 보전되어 정말 무리없이 좋은 자리에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가구 조립에 짐 옮긴다 뭐다 해서 심신이 골로 처박힌 이른 5월, 나는 그를 만나러 새로운 길을 떠났다



공연 열흘쯤 전부터 소용없다는 건 알지만 계속 날씨 체크를 했다. 다행히 비는 공연 당일은 넘기고 그 다음날 새벽쯤부터 온다고 했다.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비 맞으면서 공연 보기"라는 글이라도 작성해야 할 것 같다



궂은 하늘과 달리 잠실 주경기장 주변의 공기는 온화하다 못해 훈기가 느껴졌다. 분명히 찌푸린 대기와 흰빛 도는 하늘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기가 그와 같았다. 나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현대카드 예매 뜨기 전에 보험용으로 해 놓은 티켓 두 장을 중학생 아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왔다는 아저씨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팔았다



공연장에 가기 전에 요기를 했다. 돈까스 집에 가서 돈까스를 시켜 놓고 맥주 안주로 먹었다. 공연 전의 적당한 취기는 언제나 좋다. 그래서 여름 페스티벌이 좋은데 우리나라는 여름 더위가 과해서 (혹은 여름비가 과하거나) 뭔가 훌륭한 밸런스는 아닌 것 같다. 락페 가서 술을 맘껏 마셔본 기억이 없음


아.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거의 늘 운전을 담당해서였는지도



아무튼 둘이서 병맥주 세 병이니까 기껏해야 각자 오백씩 먹고 들어간 건데 공연장 입장할때쯤부터 숙취가 오기 시작했다 ㅋㅋ 속이 괴랄한 것이 뭔가 쌀국수나 뼈해장국을 먹고 싶은 기분이랄까? 게다가 봄밤의 야외 공연, 궁극의 아티스트와 음악에 취하기 위해 우리는 백화점 와인 파는 데 가서 하프보다 더 작은 휴대용 와인을 공연장에 반입하는 양아치 짓을 했단 말이지


그것도 세 병이나 ㅋㅋ 일단 각자 일병씩 마시고 모자랄 것에 대비한 나머지 한 병. 맥주는 아무래도 화장실이 불편하니까 무리고 고육지책으로 나온 게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기다리며 숙취가 오면서 도저히 술을 꺼낼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보통 밴드 공연과 달리 젊은 매니아들뿐 아니라 정말 정말 보통 분들처럼 보이는 어르신과 아이들도 많이 있어서 이것이 바로 공연장서 술쳐마시는 어른애새끼의 모습...이란 걸 내보이기엔 덜 취해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여의 기다림. 그는 드디어 "eight days a week"와 함께 등장했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말이다. ooh i need your love babe으로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그의 목소리와 그의 기억, 그리고 나의 기억, 우리의 기억


73세의 그는 처음 그 노래를 발표하고 불렀던 22살짜리처럼 성큼 다가왔다. 내가 처음 그를 인지했을 때 그는 이미 오십줄이었지만 그런건 상관없다. 비틀즈 초기의 러브송 특유의 발랄한 애절함, 정말 러브송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영원한 설렘. 공연 1분 전까지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첫 곡을 들어 넘기는 게 너무도 벅찼다. 내가 소화할 수 없는 거대한 영감과 애정이었다. 그 마주침을 도대체 무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왈칵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하나하나 눈에 모두 담아야 하는데, 자꾸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너무도 좋아하는 이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하는데, 그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기까지 시간을 한참 소비해야 했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만 안 오면 좋으련만....같은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어찌보면 완벽하게 연출된 분위기였다. 장마처럼 장대비는 아니고 내내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봄밤, 봄바람, 그리고 봄과 밤과 비와 바람 속에 함께 있는 폴 매카트니


"and i love her"면 공연이 반을 돌기 직전쯤이었을 거다. 숙취에 노곤해진 몸 그런 거 없고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이 밤, 이 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말이다. 물병처럼 뵈는 병을 각자 하나씩 들고 빨대를 꽂아 와인을 쪽쪽 빨면서 무대를 눈에 담았다. 이어지는 "blackbird" ㅠㅡㅠ 정말 눈물 쏙 빠지는 분위기였다. 보통 빨대로 술 마시면 엄청 잘 취하는데 맥주도 아닌 와인을 빨아먹는데도 취하진 않았다. 남은 한 병은 지금 냉장고에 있는데...암튼



아주 오랜만에 행복했다. 3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러했다. 3시간 동안 비를 맞으면서 최고의 집중력이 필요한 공연을 소화한 몸은 이미 삐그덕대기 시작했고 택시 잡을 힘까지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12시 넘어 일본라면 한 그릇씩 먹고 카카오택시 타고 귀가



집에 와서도 아주 오랫 동안, 집에 1시 20분쯤 도착했는데 한 3시 반까지 그대로 누워 있기만 했다. 뒷풀이도 불가능할 정도로 심신을 불태웠는데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도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다. 피곤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잠을 못 자겠는 느낌이 더 컸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겠지만 나는 그냥 이 밤을 영원히 그대로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거대한 사람과 만났는데, 아마 다시 만나도 반드시 이만큼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폴 매카트니도 인간이다. 그도 나이 들고 언젠가 세상을 달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영원히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 줄 것 같다.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적절한 곡을 틀어줄 것 같다



eight days a week i love you

eight days a week is not enough to show i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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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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