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ting

go and get it 2023. 7. 27. 16:03

 

 

지금 나는 내게 머문 역병이 떨어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과 별개로, 진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만 3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질병이 훨씬 더 큰 파도로 창궐할 적에도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품고 다니며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모두 잘 넘어갈 수 있었다(접촉 지인의 확진 등). 그런데 알 수 없는 경로로, 짐작키 어려운 사정으로 내 무구한 호흡기에도 녀석이 깃들어버렸다.

처음부터 몸이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흔하지 않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음의 여파로 치부했다. 그러던 것이 2박3일을 보내고 술기운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갔다고 생각될 즈음에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이때쯤에 이미 발열이 시작됐겠지만 느끼지 못했다. 내 몸은 실내에 머문 4시간여의 에어컨 바람 덕에 밖에 나왔을 땐 오한을 뱉어냈다. 몸속에 스민 냉기가 바깥 공기에서조차 중화되지 못해 오들오들 떨면서 집으로 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춥고 춥기만 해 냉방병을 의심했다. 그러던 것이 따뜻한 물을 몸 안에 집어넣고 긴팔 옷을 입고 있는 시간 동안 제 모습을 되찾아, 그때부터 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체온계로 재 보니 38도가 넘었다. 지난 몇 년, 아니 십 몇 년을 둘러 생각해봐도 38도가 넘었던 적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호흡기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다. (내 대부분의 신체문제는 소화기로부터 비롯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자는 90% 이상의 가능성으로 역병일 거라 말했다. 아니면 유행하는 독감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냉기를 못 이긴 신체의 반작용일 수도 있었다. 그 밤은 물수건으로 이마를 식히며 넘겼다. 

다음 날 아침 열을 재보니 거의 1도가 내려 37도 초반을 기록했다. 전염병 계열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갈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래서 자가키트를 꺼낼 생각이 든 거였다. 여전히 몸은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자가키트 시약창은 너무 빠르게 내가 양성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현실이었다. 내가 역병에 걸렸다. 나는 고양이세수를 하고 캡모자를 눌러 쓴 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똑같은 키트로 단번에 내 역병이 재확인되었다. 이렇게 빨리 드러나는 걸 보니 전염성이 가장 강할 시기라고 했다. 나는 증상이 경미했지만 만약 심해질 경우를 대비해 약을 3일치 받아왔다. 단순한 열이 아니라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복용하라고 했다. 

나는 나와 접촉한 이들에게 내 확진을 알리고 일단 상비약을 먹었다. 열이 다시 조금 오르기 시작했다. 발열 외에 다른 증상은 없었다. 친구들에게 실제 경험편을 잔뜩 듣고 이것저것 준비했다. 몸을 움직일 만한 것만으로도 심한 편은 아니라고 했다. 열 기운 탓에 몸이 붕뜬 느낌이 들었다. 시간맞춰 약을 먹었다. 하루의 곳곳에서 잠을 청했다. 친구가 죽을 배달시켜 주었다. 설거지는 다음날로 미루었다. 열은 여전히 오락가락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목이 시원했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3일째 아침, 목이 불편했다. 듣기로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인후통이 시작된 건지 긴장이 됐다. 처방약을 먹어야 할 시기라는 걸 알았다. 요사이 비정상적인 기상을 많이 하는데, 틈틈이 잠을 보충하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남은 죽을 데워먹고 처방약을 삼켰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좀 더 몸에 맞는 약이라는 느낌이었다. 에어컨을 껐다켰다 하면서, 오렌지주스나 아이스림 따위로 목을 달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목의 아픔은 잦아들었다. 밥먹은지 3시간이 지나 점심약을 먹고 낮잠을 잤다. 몸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호흡기질환이 사흘이나 내 몸에 머문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지금은 오후, 두어시간 뒤 저녁약을 먹기 위해 죽을 먹을 것이다.

내일은 거동이 용이하면 좋겠다. 할 일이 많다. 말인즉 증상이 거의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린다. 역병이 떠나기를 기다린다. 작은 불편함부터 큰 불편함까지 감당할 게 많다. 내일을 기다린다.

 

 

 

 

 

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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