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은 잘생긴 옆집 청년을 눈여겨본다.

 

대학생인 그는 옆집의 2층 방 한 칸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키가 크고 기름한 눈매는 끝이 살짝 쳐져 있어 선한 인상을 풍긴다. 아침마다 운동을 나가느라 파머스마켓에 장을 보러 가는 수잔과 자주 마주친다. 마주칠 때마다 깍듯이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그의 이름이 데이빗이라는 사실을 수잔은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에서 짐을 들고 있는 그녀를 보면 데이빗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 후다닥 달려와 그녀의 짐을 들어준다. 그래봤자 장바구니에 든 당근이나 양파, 샐러리와 몇 가지 종류의 통조림 정도라 무겁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의 눈에는 수잔이 짐을 꼭 들어주어야 할 만큼 나이들어보이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될까말까 한 청년에게 오십대 후반의 여자는 엄마뻘 그 이상일 테니까.

 

오늘도 데이빗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오늘은 들어줄 짐이 없어 사뭇 아쉬워 보이기까지 하는 데이빗의 표정이 약간의 어색함과 수줍음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수잔은 알아차린다. 아무리 옆집에 산다지만 참 자주 마주친다고 이야기를 건네본다. 데이빗도 동의를 표한다. 두 사람이 또래였다면 이를 빌미로 데이트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수잔은 생각한다. 적어도 수잔은 데이트 신청에 예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만큼 데이빗이 마음에 든다. 흔한 호감을 주는 사람 이상이다. 수잔은 데이빗이 주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단순히 착한 성정의 젊은이에게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넘어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수잔은 시간이 괜찮으면 차를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동안 도와준 일에 대한 사소한 보답이라고 말이다. 데이빗은 일이 초 정도가 지난 뒤 감사히 초대를 받아들이겠노라고 답한다. 안될 것 없다는 태도가 느껴져 수잔의 마음에 걸린다. 이왕이면 기꺼이, 기쁨만으로 같은 뉘앙스이기를 바랐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라지 않는다. 집에 다다른 그들은 데이빗이 가방을 방에 놓고 오겠다고 말해 잠시 헤어진다. 수잔은 늘 말끔하게 정리돼 있는 거실을 한번 둘러보고 주방으로 가 제일 좋은 찻잔을 찬장에서 꺼낸다. 품질이 좋은 찻잎통을 꺼내고 찻잔과 세트인 섬세한 문양의 주전자를 내린다. 그때 벨 소리가 들린다. 수잔은 미소 지으며 현관으로 나간다.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데이빗의 환한 웃음에 수잔은 한순간 얼어붙어버린다. 수줍은듯 정중하면서도 친근한 청년의 표정이 몹시 낯익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수잔 그녀의 얼굴이었다. 웃을 때 휘어지는 눈썹의 모양과 색깔이 그녀 자신의 것과 무척 닮아 있다는 데 생각이 닿자, 그동안 느껴왔던 친근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 깨달음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데이빗은 누구일까? 이토록 가까이 느껴지는 젊은 타인은 수잔에게 누구일 수 있을까.

 

꽃다발을 받아 허리가 긴 화병에 멋들어지게 꽂고 데이빗에게 집을 구경시켜주며 수잔은 마음 깊숙한 곳에 봉인해두었던 하나의 가능성을 끄집어낸다. 식탁에 마주하고 앉아 능숙하게 차를 우려내면서도 수잔의 머릿속은 다른곳을 헤매고 있다. 이렇게 정식으로 우려먹는 차를 대접받기는 처음이라며 찻잔을 소중하게 쥐는 데이빗의 섬세한 몸짓이 그녀의 추정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 하다. 잘생기고 인정 많고 배려심 깊은 이 완벽한 청년은, 웃는 모습이 그녀 자신을 꼭 닮은 이 어린 남성은, 어쩌면 수잔의 손자일 수 있다.

 

수잔이 열일곱 살을 맞이한 그 여름,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너무 조그마해 모든 것이 바스라질 것 같았던 작디작은 딸아이를 책임감 넘쳐보이던 다정한 부부에게 입양보냈다. 그후로 그 아이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수잔은 난임이 되었고, 결혼 후에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남편 피터는 아이를 원했고, 그녀를 떠났다. 수잔은 피터를 원망하지 않았다.

 

데이빗은 수잔이 남몰래 엠마라고 이름지어 불렀던 딸아이의 아들일 수도 있다.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자기 안에서 나온 그 작은 아기를 딸이 아닌 어떤 이름으로 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안의 엠마가 양부모 밑에서 의젓하게 자라나 아이를 낳았다면, 아들을 낳았다면 꼭 데이빗 같지 않을까, 그녀는 생각한다. 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가까운 느낌은 핏줄의 끌림이 아니었겠느냐고, 자기를 마주한 채 차의 향을 느끼고 차를 음미하는 청년을 보며 수잔은 스스로를 설득한다. 

 

"데이빗."

 

수잔은 눈이 동그래지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자신에게 손자가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리라, 그녀는 확신한다.

 

 

 

 

 

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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