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은 유행 중인 숏 쇼츠를 무척 입고 싶었다. 친구들도 모두 숏 쇼츠가 그녀에게 잘 어울릴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에린은 길고 쭉 뻗은 멋진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쇼츠에 잘 어울릴 하이힐도 한 켤레 사 두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직 고등학생인 에린이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그렇게 "선정적인" 옷을 입게 내버려둘 만큼 개방적인 가치관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에린은 엄마아빠만큼 보수적이고 꽉 막힌 고집불통은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도 숏 쇼츠를 두고 엄마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 에린은 그대로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모아둔 용돈과 하이힐을 들고 나온 에린은시내로 나가 최신 유행의 쇼츠를 쇼윈도에 멋지게 전시해둔 편집매장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점찍어두었던 쇼츠를 사버렸다. 이대로 엄마아빠에게 끌려다니다간 나이를 먹기 전엔 쇼츠를 입어보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사이 유행이 지나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

 

숏 쇼츠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은 에린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너무나 예뻤다. 매장점원도 으레 떠는 호들갑이 아니라 진심으로 에린을 칭찬했다. 적어도 일을 저질러버린 에린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에린은 위풍당당하게 옷가게를 나와 공중전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에린은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모두의 눈길이 그녀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와 유독 짧은 최신 숏 쇼츠에 가 닿았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차츰 신경이 쓰였다. 쇼츠가 말려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바짓단으로 손길이 가기도 했다. 

 

"아가씨,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새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던 에린은 젋은 남자 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OO매거진 기자라고 말하며 명함을 내밀었고, 혹시 숏 쇼츠를 입은 그녀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왔다. 길거리 패션을 다룬 칼럼 꼭지에 그녀의 사진을 쓰고 싶다는 거였다. 에린은 받아든 명함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그녀를 온통 뒤흔들었다. 이 유명한 잡지에 사진이 찍혀 기사에 실린다면 그녀의 모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여타 후보들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은 자명했지만, 갑작스레 캐스팅 제의를 받은 열일곱의 그녀가 그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 순간 문득 에린은 오늘 그녀가 하루종일 느꼈던 찬사가 진실이었는지 아니면 흥분한 그녀의 과민반응이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일종의 모델료로 다소 엉뚱한 것을 요구해보았다. 그들이 정말 자신의 사진을 칼럼에 적합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면 내어주지 못할 것도 없는 물건이었다. 기자들은 에린의 요구에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꽤 의외지만 오케이라는 신호였다. 에린은 처음으로 숏 쇼츠를 사서 입은 날 꽤나 과감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다. 엄마아빠가 보면 기절할 컷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받았고 어쩌면 아주 아주 오랫동안 남을 기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에린은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동차 바닥 깔개 두 개로 그녀의 앞모습을 가린 채 말이다. 자동차의 왕국 디트로이트, 기자들의 차는 마침 에린의 부모님과 같은 차종이었고,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에 뽑은 신형 모델이라는 점이었다. 최신형이라고 해도 바닥 깔개가 다를 건 없었다. 대학생인 오빠 바비가 부모님의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앞좌석의 바닥 깔개 두 개를 버리고 돌아온 뒤 - 토사물 때문이었으리라고 에린은 추정했다 - 아직 오빠는 새 깔개를 채워두지 않았다. 완전히 비틀어져 버린 사이드미러 수리비를 마련하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엄마아빠는 아연실색한 눈으로 깨끗한 자동차 바닥 깔개와 그 아래로 보이는 에린의 정강이와 하이힐을 바라보았다. 에린은 조금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활짝 웃는 표정을 꾸몄다. 모델로 데뷔한 그녀가 아니던가!

 

 

 

short shorts, Detroit (1956)

 

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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