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홉 살 때 일이었어

식탁에 둘러앉아 명절음식을 먹던 할머니와 엄마가 싸우기 시작했어

무엇을 가지고 싸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때 할머니의 섭섭한듯 당당한 말투와 엄마의 그건 그게 아니라요오, 라고 어미를 조금 끄는 말투가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야

그리고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동댕이쳤어

사실 이것도 정확한 기억은 아니야

숟가락이 식탁 밑으로 떨어진 기억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어

아버지는 화가 났던 것일까?

그러자 식탁에서 물러난 엄마가 바닥벽에 기대 앉아 울기 시작했어

내 8년 평생(이 나이도 정확하지 않아) 그렇게 무서운 일은 처음이었어

엄마가, 어른이, 울 줄 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

두려움은 낯섦에서 비롯되지. 공포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접해보지 못한 무언가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야

얼마나 무서웠냐면 몸이 완전히 굳어 울음조차도 나오지 않았어

발밑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란 것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지

나는 간신히 엄마 쪽으로 다가갔지만 엄마를 만질 수 없었지

엄마의 모습에 할머니랑 아버지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어

아버지는 아무 말도 어떤 몸짓도 취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울지 말라'고 본인 잘못이라는 듯 말했어

 

그때 먹었던 음식이 내겐 가장 맛이 없는 명절 음식이었어

왜냐하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거든

나는 엄마가 울음을 그치길 바랐어

그래야 내가 사는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았지

할머니랑 아버지가 조금 미웠어

비정상적인 세상, 무너져버린 세상을 경험하게 했기 때문에

어떤 맛도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을 먹게 했기 때문에

 

그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후에도 엄마나 아빠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어

그렇게 나는 내 작은 세상이 어떻게 이지러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됐지

어떻게 음식에서 맛이 사라질 수 있는지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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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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