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구랑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맥주를 마셨지요

여러모로 저는 술을 마시면 좋지 않은 몸과 마음인데, 오래된 약속이라 기분좋게 먹고 마셨어요

그래봤자 맥주 한 캔 하고 반인데, 그걸 네 시간 동안 마시는데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더라구요

 

 

친구가 낯설고 먼 곳으로 왜 택시를 타고 갔냐고 물었고, 저는 당신을 보러 가기 위해 그랬다고 말했어요

당신을 이야기할 때 당신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당신의 얼굴을 떠올린 건, 사진 속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당신을 떠올린 건

집에 돌아와 tv를 보고 루틴처럼 웹을 헤매다가 잠에 들 무렵이었죠

 

 

아마 당신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의 부재를 몸으로 이해할 것 같다고 느꼈어요

한번에는 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추위를 좀 느끼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으며 맛있게 먹고 마실 땐 춥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약한 냉기를 받으며 저도 아직 어떻게 다룰지 몰라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없는 침잠이 찾아왔어요

 

보통은 술을 마시고 나서 일어난 다음날 느끼는 괴로움인데,

중간에 그렇게 공격이 들어오고 말았어요

갑자기, 갑자기 그래서 이유를 생각했어요. 당신 생각이 바로 났죠

전날 바로 당신을 보고 돌아왔으니 내 마음의 한 부분이 조각나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왜 그렇게 저는 이유를 찾아야 할까요. 저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니까 아무 때고 그럴 수 있는데.

아마 이과 출신이라 그렇지 않을까, 그게 다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큰 몫을 차지할 거다, 라고 늘 생각해요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MBTI의 기질상, 이유를 모르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확고한 NT라 그럴 수도 있고요

이것 좀 보세요. 또 이유를 찾고 있어요

 

당신은 제 학교선배니까, 당신도 이과 출신이니, 제 말을 들으면 바로 고개를 끄덕여주실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과 저는 여러 행보를 공유했고, 그것보다는 당신과 제가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에서 

제가 흐뭇하게 느꼈던 영혼의 동질감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그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는 사실이 저를 자신없게 만들어요

 

 

 

 

당신에게 전화하고 싶었어요.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느끼는 어려움을 말하고 싶었는데,

당신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는 언제나 그랬듯 타인에게 감추는 방식만을 겨우 짚었어요

지난 일년 간은 손가락 놀리는 것도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 와중 당신에게라면 몇 년 만이라도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들고 말았습니다

 

 

 

제 기억 속 당신은 늘 반짝반짝해서, 눈부시도록 반짝거리기만 해서,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올 때 그 반짝거림부터 저는 마냥 좋기만 했어요

많이 좋아했어요. 제가 충분히 표현했었나요? 이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된 그 날들에

제가 얼마나 당신을 좋아하는지 당신이 알만큼 말하고 쓰고 몸짓으로 보여주었나요

 

 

 

그래서 저는 약을 먹었어요. 바로 그런 순간에 대비해 약을 넉넉히 들고 다니거든요

약이 효능을 발휘하는 15-20분의 시간이 흐르고 제 심장은 물리적인 고통을 잊어요

그 순간이 오면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해야 하지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친구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지요. 친구를 또 걱정시키고 말았지만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눈이 잠겨버릴 정도로 웹을 헤맬 때 제 목적이 무언지 모르겠어요. 주로 예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다녀요. 외형이 예쁘든, 그들의 시간이 아름답든,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몇 시간이고 헤매요

 

 

그리고 저는, 시간의 광폭한 힘을 믿는 저는, 시간이 흘러 치유되거나 익숙해진, 무디어지고 바래진 상처와 슬픔과

무엇보다 당연히 흘러가야 하는 일상의 거대한 파도에 겁먹어요. 아연함을 느끼고 무서워해요

그건 아마 제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아픈 사람이니까 그런 것도 당연하겠죠. 그런데 제가 아프지 않아도

아마 쓸쓸함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가지고 태어난 자석은 슬픔을 끌어들여요.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결핍이 제가 문장을 만드는 유일한 동력이기 때문이에요

 

 

삶에서 우선순위가 이미 결정돼 버린 이들의 일상이, 때때로 저를 힘들게 해요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당신의 뒤를 따르면서, 그리고 당신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지하철을 타고 내려 국화빵을 사먹고 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익숙한 아픔을 느끼고 또 쓸쓸해졌어요

 

 

 

언제나 그렇듯 저는 마무리를 못해요

마무리라는 말이 옳지도 않지만, 저는 노력하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두고, 그게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요

감당해야 하는 것은 몽땅 제 몫이고, 그것은 제 선택이지요

당신에게 일찍, 일찍 물어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당신이라면 제 고집만 말하지 않았을 텐데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 아집을 솔직히 말하고 싶고 솔직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너무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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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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