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작업물 백업한 USB를 주머니에 넣고, (책상 눈앞에 있음)

 

실은 CD를 가지고 나오고 싶다.

 

한두장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가지고 나오느냐가 문제고, 그게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논의까지는 갈 필요가 없는 듯하니, 어쨌든 CD들이다.

 

CD에 차등을 둘 것도 없다. 내 CD는 알파벳 순서로 정리돼 있고 (가요 CD는 포기) 가감없이 차등없이 소중하다. 다 가지고 나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상황에 처해졌을 때 큰 가방을 열고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넣다 보면 - 손에 잡힐 때 이미 알파벳을 보게 될 터이기 때문에 어떤 열일지 의식하게 될 것도 문제 - 선택을 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다면 몇 장 먼저 챙길 CD들이 생각나긴 한다. 내 CD들은 특별히 희귀할 건 없지만 중학생 때부터 모았기 때문에 옛 시절의 컨템포러리라고 하면 이미 이 시대에선 돈 들여 살 수 없다. 사실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설명이고, 그냥 내 시절의 기록이기 때문에 내겐 값어치를 매길 수가 없는 자산이다. 다 가지고 나오지 못하면, 그래서 소실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 다시는 수집을 시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컬렉션을 만들듯 모으지 않았다. 그럴 돈도 없는 시절부터 정말 듣고 싶은 음악들을 한장 한장 사면서 컬렉션이 만들어졌다. 내 CD의 가치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다.

 

 

 

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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