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정말 실수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서둘러 화장실로, 매점으로 달려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사이를 허겁지겁 뛰다시피 걷다가 그만 책상 옆에 걸어둔 누군가의 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라고 묻는 아이들도 내가 후다닥 일어나 무릎을 문지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짓자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바닥에 긁힌 무릎에는 긴 찰과상과 그 끝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소독을 하러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 다리가 걸린 가방의 손잡이 한쪽이 달랑달랑 떨어져 나가 있었다. 순간 나는 오싹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넘어져 다친 데다가 남의 가방까지 망가뜨려 놓은 것이다. 나는 몹시 억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자리를 보니 가방은 가영의 것이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데다가 말도 거의 섞어본 적 없는 아이였다. 내가 잘못한 상황이었지만 잘못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재수없다는 생각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영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는 상상을 하자 아득했다. 나는 그런 입장에 서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그 열망만이 내 온 몸을 지배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줄지어 서 있는 책상은 거의 비어 있었고,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제 일에 열중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잡이가 떨어진 가방을 집어들고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가방을 다시 걸었다. 가방은 삐뚜름하게 걸렸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아이는 없었다. 나는 무릎을 살펴보는 시늉을 하면서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가서는 수돗물로 상처 부위를 닦았다. 거울을 보았다. 내 표정도 마음과 같았다. 나는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나도 가영도 좀 재수 없는 날이었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을 때쯤 종이 울렸다. 나는 나보다 앞 열에 앉은 가영을 자연스럽게 바라보았다. 가영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쉽게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애는 크게 당황한듯 보였다. 옆에 앉은 아이를 붙잡고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가영의 짝궁은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선생님이 들어왔는데도 가영의 신경은 온통 가방 손잡이에만 닿아 있었다. 그깟 가방 손잡이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가영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수업 시간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가영은 수업 종료와 함께 가방을 끌어안고 자세히 살펴보곤 어이없게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변 아이들이 가영에게 모여들어 사정을 전해듣고 가영을 위로했다. 누군가가 가방을 망가뜨려놓았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아이는 가영을 빼놓곤 없었다. 아무도 가영의 가정과 추론을 뒷받침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 보였다. 조금 미안하다는 감정이 올라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자백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과를 하고 보상이라도 하려면 손잡이가 떨어져나갔던 그 시점에 했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와 용서는 불가능해진다는 판단이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시간을 계속해서 흘려보냈다. 가영의 흥분과 울음도 잦아들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란 소리다.

마음에 거리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귀가했다. 아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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