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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12. 2. 16:50

 

 

 

그에게 그 모든 일이 시작된지 8개월이 넘게 지난 것 같다

 

중간중간 운전을 못한 날이 있었고, 홀로 앉아 있다 문득 심장이 내려앉기도 했고, 한없이 심연으로 가라앉아버린 어떤 날들에는 식은땀으로 이불을 적시며 깨어나 다음날 먹을 약을 집어삼키고 침대에 다시 누워 '괜찮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약 없는 날을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는 때로 밝은 열망을 느낀다

그게 힘이 되는지, 힘이 필요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아직 생각할 용기가 부족하다

그는 음식과 알콜에 대한 대부분의 욕망을 잃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한잔 마시고 싶다고 느낀다

 

 

 

어느 날 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먹어야 하는 약 일곱 알을 습관처럼 입속에 차례차례 밀어넣어 삼키다가,

(일곱 알을 먹는 데 다섯 번의 삼킴이 필요하다)

맨 마지막 알이 물이 넘어가기 전에 먼저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가고,

그는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탁자에 흘려버린다

내뱉은 게 아니라 입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근육이 찰나의 순간 작업을 포기하자 입이 열려 모두 나와버린 것이다

약을 삼키는 공포가 돌아올까봐 두려움에 놀란 그 짧은 한때 그는 세상에 혼자 머무는 것 같다 느낀다

입에서 주르르 흘러버린 물을 한동안 바라보며 그것을 닦아야지, 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 그는 언제까지 이런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라 새삼스레 깨닫는다

다행히 그는 몇 분 뒤 몸을 움직여 탁자를 깨끗이 닦고, 물을 조심스레 한두번 더 삼키고,

침대와 주방 사이 벽에 몸을 기대 무슨 일이 벌어질지 4분이나 8분 동안 지켜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누구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고

그 사실이 그에게 위안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는 슬픔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을 결코 연민할 수 없는 그는,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 말라버린 눈물샘에 대해 생각한다

원래 눈물이 헤픈 그는, 요 몇년간 눈물이 배로 헤퍼진 것을 노화의 증거로 여겨 짜증을 좀 내다가,

이제는 종일 약기운에 지배받아 키작아진 감정의 높낮이에 대해 생각한다

예민하게 느끼고 섬세하게 들여다봐

그것을 타닥타닥 타이프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시작하려면 다섯 배쯤 늘어난 워밍업이 필요하다

그 워밍업도 그의 가슴을 쉽게 움직여주진 않는다

그것을 기록하는 그의 손도 그에게 추가된 결핍을 슬퍼하고 싶지만,

그 바람만이 머리로 기억될뿐 구체적인 감정의 디테일은 그에게 닿지 않는다

 

 

그는 지난 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는 이미 모든 일이 벌어져버린 이 지점에서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 바람은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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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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