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loafing 2021. 7. 18. 02:08

 

 

제주는 여름이 아니었다

내내 스웨트셔츠나 긴팔 위에 겉옷, 반팔 위에 겉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이제 보름이 넘어가는 나의 여름인데 무척 힘이 든다,

고 생각해보니

나는 여름을 시작할 때 늘 앓았다

냉방기구에 적응하는 시기를 거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된다

사실 더위는 선풍기로도 괜찮은데 습도 때문에 켠다

요즘 내 상태는 더위먹은 게 아니라 습도먹었다고 표현해야 옳다

몸무게가 매일매일 줄어드는 게 멈추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낀 날부터

신경써서 많이 자주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진짜 입맛이 없으면

많이 먹는 느낌만 들뿐 많이 먹게 되지는 않는지 어렵다

 

 

운동을 하기엔 지나친 날씨라 일단 필요하다고 생각한 보충제 몇 개를 샀다

서너가지 시도해본 유산균 중 가장 몸에 맞는 유산균을 찾은 것 같아서 만족한다

루테인은 사실 직접적인 효과는 모르겠지만 계속 먹어야 할 것 같다

 

 

 

영화도 몇 개 봤다

<루카>를 보고 울었는데 <블랙위도우>를 보고 오열했다

몇백년만에 뿌엥 흐헝헝 하고 소리내 울어버렸다

그날 무슨 일인지 손수건을 두 개 가지고 나갔는데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었다

 

 

 

머리를 기른지, 몇 년이 됐나 모르겠다

왜냐하면 기르다 에잇 자르고 기르다 에잇 자르고 한 시기가 몇 년 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나는 참았고, 그 뒤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십 몇 년 동안 줄곧 숏컷이나 숏단발 외에는

해 본 적이 없으니 나로서는 새로운 길이었고

"지금까지 기른 게 아까워" 자를 수 없는 마음을 품게 된 지도 꽤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기르는 건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짧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리니까 여차하면

그냥 잘라버려도 되니까. 그럼 내 베스트를 찾는 게 되니까

이제는 머리가 묶이는 것은 물론 포니테일도 된다 

뭘 따져보지 않아도 나는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까 말했듯이 지금까지 기른 게 아까워서 못 자른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위 말하는 거지존에 들었는데, 벗어날 때까지는 길러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마친 뒤 급하게 머리를 싹둑 자를 것 같다

 

 

머리가 길어지니 온 바닥에 머리카락밖에 안 보인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몇년 전의 실버블론드에 가까운 탈색과 그 이후로 지속되고 있는 염색으로 

머리카락에 힘이 없고 많이 가늘어진 것 같다. 그래서 더 잘 빠지는 것 같은데,

단순히 나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

 

 

 

제주에서는 열심히 일한 것 같다

열심히 먹고 마시기도 했고

가기 하루 전날, 응급실에 실려갔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불편하게 갔는데

어쩌다 링거줄이 빠졌고 말 그대로 피가 줄줄 흘러 타일 바닥에 뚝뚝뚝뚝 떨어져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는 모습이 신기해서 얼빼놓고 구경하다가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에 시간차가 생겼다. 링거 꽂은 자리와 피뽑은 자리에 멍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몸에는 별 이상이 없고, 사실 빈속에 택배 상자 좀 들었다고 실신하는 몸이 이상 없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새 트라우마를 얻은 것 같다

그래도 난 이번에도 잘 주저앉고 정신이 완전히 가기 전에 스스로 119를 불렀다

그래서 여러모로, 제주에선 운동도 했다. 땀이 쭉 날 때까지 천천히 조심해서. 좋은 일상이었다

돌아와선 컨디션이 바닥이고, 방역조치 때문에 운동하러 가진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유산소 운동을 쭉 선호했는데, 근육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안 돼봤자,....라고도 생각하지만 어쨌든 통증이 있으니 아픈 게 싫어서라도,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바이오리듬상의 오늘은, 파이널 5차전 전날이다

집착으로 고통스럽고 이윽고 아파지는 게 싫어서, 마침내 견딜 수 없어져서 덕질을 멈춘 건데

난 또다시 바람 때문에 잠을 못 이루려 한다

사실 그래도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파이널인데,

그래도 괴로움의 재생산이다

 

예전에 난 상대팀이 아무리 강해도 경기를 보지 않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상대팀이 상대적으로 강하지도 않은데

(선즈가 절대적으로 강하지도 않고)

눈을 감았다 뜨면 espn의 스코어 메뉴에서 4Q end 뒤 화살표가 우리팀 쪽에 있는 모습만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농구 때문에 소화 안되는 게 정말 싫다

 

 

 

 

그래도, 지금 열심히 날아오고 있는 컨퍼런스파이널 챔피언 티셔츠와 파이널진출 스냅백을

쓸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다른 걸 더 사야 해서 그 다른 걸 입고 쓴 채 피닉스 선즈 물품이라곤 하나도 구비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NBA 매장 앞을 활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뭘 더 바라면 안될 것 같아

 

 

 

 

내일 모두 기쁜 오후를 맞이하기를

 

 

 

 

 

 

 

 

 

 

 

 

벅스팬만 빼고,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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