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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7. 13. 07:08

 

그 날은 이른 봄볕이 따스했다고, 그는 기억해

 

그의 친구가 먼저 떠나고 그는 섭섭함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끼며 남은 날들을 계획했어

끝내 친구와 함께 떠났어야 했다는 생각 한 자락이 내내 지워지지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

아니,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한다고 믿었지

 

 

그는 때때로 그때의 결정을 생각해

친구와 함께 섬을 떠나왔다면, 그래서 혼자 머무르지 않았도 되었다면,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짐을 이끌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 끈기 있게 짐을 풀고 피로한 몸을 뜨거운 물로 적시며 깨는 법 없는 잠을 청했을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야

 

물론 그는 평소에도 잠에서 한번쯤은 늘 깨곤 하지만, 그게 수면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

그는, 친구를 따라나섰다면 그는, 그 모든 비현실적인 고통의 나락에 빠지는 법 없이 날들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어떤 판단도 가능하지 않았던, 0.1초 후에 숨 쉬는 법을 잊을지 모른다는 확신 때문에 숨이 막혀오던 어느 날, 그는 그렇다고 생각했었어. 홀로 남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으로 종잇장 같은 몸이 납작하게 눌리는 경험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야

 

뭐, 그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

 

 

 

 

그는 평소와 같이 일감을 챙겨 집을 나섰고,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장소에 머물며 일을 하고 있었어. 일할 때만 마시는 커피가 좀 진했고, 챙겨 다니는 빵을 조금 먹고 나서였어

 

그게 대단한 전조였던 적은 한번도 없어

그건 그냥 스륵, 다가오고 그는 그 자연스러움에 크게 당황할 뿐이야

 

심장이 조금 덜컥 내려앉았고, 위장병을 지닌 그의 속이 약간 뒤틀리기 시작했고, 그 덕에 머리에 안개가 낀듯 좀 몽롱했어

그 일련의 반응 덕에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지

그때 이미 그는 스스로의 몸을 이성으로 제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어쩌면 그것은 거부인지도 모르겠어. 그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신체 반응을 멋대로 해석하는 일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경향이 있어. 그가 걱정하는 것은 아마, 만에 하나 스스로에게 닥칠 위기상황보다는, 아직 제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멀쩡히 살아있던 기회를 안이함으로 날려버리는 일의 멍청함이야.  그렇게 그는 어리석어지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지 

 

 

그는 재빨리 짐을 챙겨 장소를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어. 운전이 가능할까? 싶긴 했는데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병원에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의 차를 몰고 가는 것이었어. 이 모든 법석이 그의 증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도 알았고. 하지만 그 순간에 그런 인식은 그의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거든. 어쨌든 호흡이 가능했고, 심장이 빨리 뛴다는 사실만을 인지한 채 그는 그가 알고 있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어. 이런 순간에 운전을 할 때 그의 한쪽 손은 핸들에, 한쪽 손은 경동맥을 짚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몇 차레 있었지만, 그는 점점 비현실에 잠겨가면서도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어. 병원은 그가 신뢰하는 의사가 있는 곳이었어. 과도한 근심을 품은 자들의 어리석어보임에 대한 염려 따위는 없었어. 의사를 대면한 그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증상을 설명했어. 그리고 그것만으로 차를 달려 온 이유에 대해, 심장 쪽에 문제가 있으면 이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나이브한척 심각한 걱정을 품은 자를 연기했지

 

신중한 의사는 그의 설명을 하나하나 새겨가며 들었고, 위경련 같지만 그의 염려를 존중해 심전도 검사도 처방했어. 그가 걱정하는 급성 심장병이라면 심전도에 나타난다는 설명을 친절하게 덧붙이면서. 그래서 그는 심전도 검사를 받았지

 

물론 심전도에 이상은 없었어. 의사는 그런 걱정을 다 했느냐고 가볍게 웃었어. 그리고 5분짜리 수액을 맞을 것을 권했어. 그는 마음을 놓았다고 생각했어. 의사가 확인시켜준 사실이니까. 수액을 맞을 때 해프닝이 있었지. 간호사가 팔뚝 혈관에 바늘을 잘못 꽂아 큰 고통이 찾아왔어. 팔 한쪽이 마비되는 고통이었지. 처치가 이루어졌고 팔은 편해졌어. 울음을 터뜨릴듯 미안해하는 신입 간호사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어. 제대로 들어간 바늘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그는 누워 있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것으로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어. 최초 증상 발현 후 시간도 꽤 지나 있었으니까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손에 들고 그는 다소 멀리 세워놓은 차로 다가갔어. 그는 편안했어. 이것이 그동안 그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방식이었거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어. 어제 만들어놓은 음식을 데우고, 빨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지어가지고 온 약을 삼키고 싶었지. 그리고 하루라도 혼자 이곳에 머무는 게 무리라는 사실을 인정했어

 

 

아마 그 순간이었을 거야. 당장 내일 섬을 떠날 수 있는 비행기편을 알아보면서, 그가 신뢰하는 동네의사의 처방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그게 그의 방식이야. 아니지, 그게 그의 병증이야. 한번도 진단받은 적 없지만, 때때로 그를 예측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곤 했던 그 병증의 전형적인 증상이야

 

 

 

이미 그는 정신이 무너지고 있었어. 비행기 편을 알아봐야 하고, 무척 큰 짐이 될 가방을 꾸려야 하고, 무엇보다 큰 병원을 찾아가야 했어. 심장은 내내 뛰고 있었지. 팔과 어깨가 저리고, 다리도 저린 것 같았어. 사실 그는 자신의 신체 반응을 확신할 수 없었어. 정말 아픈 것인지, 아픈 것처럼 느끼는 것인지. 하지만 관계 없지.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섬 안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는 핑계가 될 만한 작은 증상이었으니까. 만약 그가 몸에서 어떤 증상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자신을 속일 수는 없거든. 어쨌든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그는 한시라도 빨리 큰 병원에 가고 싶었어

 

요동치는 가슴과 뇌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여기엔 쉽지 않은 문제가 얽혀 있어. 너무나 다급해진 그는, 차라리 이대로 밤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했어. 짐 따위 내버려두고 신분증과 돈, 폰만 챙겨서 떠나는 것이지. 가족 곁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자신을 보호할 이들이 머무는 곳으로. 짐이야 나중에 가지러 오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그는 밤 비행기를 덜컥 예약해 버렸어.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 그는 간단한 짐을 챙겨 택시를 불렀어. 병원엘 다녀와도 혼자 보내야 하는 밤이 두려울 것 같았거든. 이상한 일이지. 큰 병원에 다녀오면, 그런 종류의 공포는 늘 사라지곤 했는데. 그래서 그가 택시를 타고 최초에 닿은 곳은 공항이었어

 

그리고 그는 택시 안에서 생각을 바꾼 것 같아. 충분히 비이성적인 상태지만, 이대로 덜컹 밤 비행기로 육지에 닿는 것만큼 비이성적일 수는 없다는 이성이 작동을 했거든. 그리하여 공항에서 내린 그는 수속 카운터로 달려가 예약한 비행기를 다음날 오전으로 바꾸고 공항을 나와 다시 택시를 잡아탔어

 

 

이번에는 진짜 병원으로, 그의 무너진 몸과 마음을 돌보아줄 큰 병원으로 택시는 바람같이 달려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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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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