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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5. 08:20

 

"예...에?"

 

그는 놀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잠깐 이 상황이 시트콤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불편함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그는 전공의로부터 본인의 증상이 "뇌졸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동안 응급실에 몇번 들어간 적 있는 그에게는 생전 꿈도 꿔본 적 없는 피드백. 그는 심장 이상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거하고자 가장 큰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달려온 것이고 혹 그런 증상이 있으면 심장검사를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면서 서술을 한 것뿐인데

 

갑자기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그 이유를 의사는 친절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응급실에서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뇌졸중과 심근경색이라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또는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아마 그 때였을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 일종의 안정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는 더 큰 불안, 상상해본 적 없는 불안을 떠안은 채 간호사가 지정해준 침상에 짐을 내리고 커튼을 두른 채 환자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드러눕는다. 간호사와 의사가 차례로 찾아와 증상을 다시 물어보고 채혈을 하고 혈압을 잰다. 사실 그가 증상이라 말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인지 그가 의심하고 있는 것들이다. 손끝과 팔, 정강이에 저린 느낌이 있지만 그는 그게 불안에서 비롯된 느낌인지, 실제 증상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말은 응급실에서 할 수 없다. 이미 또 다른 질병, 머리와 관련된 질병의 가능성이 그의 품 안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낙담에 빠져있지만 병원이라 걱정을 덜 수 있다. 그게 다이던 시절은 이미 끝나버렸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신경과 교수에게 콜이 간 것이 그의 귀에 들리고, 의논 끝에 그에게 CT촬영 진단이 내려진다. 그는 예전에 CT를 찍어본 적이 있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조영제의 느낌이 좀 묘했다는 것 정도만이 기억난다. 어쨌든 그때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기에 그는 순순히 CT촬영에 동의한다. 다시 한번 심전도도 하고, 또 혈액검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는 무표정으로 잠자코 누워 있었지만, 뇌의 질병이 입에 오르내린 것이 그의 저림 증상이 한쪽, 즉 왼쪽에만 나타났기 떄문이라는 사실을 이런저런 대화로부터 캐치한다

 

그런 거였군, 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느낌이든 뭐든 그게 사실이기도 해서 그는 머리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한다. 아니, 이제 그런 얘기를 들은 이상, 머리 검사 없이 병원을 빠져나갈 수는 없게 됐다. 그는 새로운 질병을 얻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조영제를 맞고 CT촬영을 한다. 옛 기억과 달리 온 몸의 혈관이 끓어오르듯 뜨겁다. 검사는 금방 끝났고, 다시 응급실의 병상으로 돌아오는 그의 몸이 진저리를 친다. "추우세요?" 라고 묻지만, 추운듯도 싶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그의 몸이 반사작용을 일으키듯 의지와 상관없이 진저리쳐지고 있다. 마치 간질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제멋대로 덜덜덜거리고 우두두두,후루루룩 움직인다. 그는 조영제의 부작용인가 싶어 의료진에 묻지만 그런 종류의 부작용은 드물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5분 가량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데 움직여지는 몸을 제어하지 못해 또다른 기억을 각인한다. 나는 CT는 안될지도 모르겠다

 

 

몸이 진정되고 그는 두어 시간 걸릴 거라는 말에 수액을 꽂은 채 누워 있다. 병실을 둘러보면 나이든 노인들이 보호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한순간 이 모든 게 재미없는 농담같고, 그는 그 순간의 느낌들이 싫다. 오후부터 밤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촌각을 다투는 급성질환이라면 벌써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는 늘 죽어도 상관없고 여한도 미련도 없다고 여겨왔지만 스스로 상정한 죽음의 가능성 앞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그것이 급사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인지 판단하기를 포기한다

 

 

 

두 시간이 한참 안 된 시점, 신경과 교수가 직접 그의 병상을 찾아온다. 그는 친절한 말투로 CT상 혈관엔 아무 문제도 보이지 않고, 심전도도 피검사도 이상 없다고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CT는 미세한 혈관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미세한 혈관까지 완전히 체크하려면 MRI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허나 자신의 소견으로는 굳이 MRI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젊은 사람들이 팔다리 저림 증세로 외래를 많이 보러 온다고 말한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면 MRI를 찍는 걸 말리지는 않겠다고 덧붙인다

 

그는 일단 자신이 우려했던 심장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을 얻는다. 전문의의 소견에 따르는 게 합리적인 일이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감추기보다 말해버린 그 MRI, 그것을 찍으면 그는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그가 한 것은 당시가 아니다. 몇년 같은 며칠 후, 후회하며 그가 한 생각이고, 신경과 교수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는 그럼 퇴원하겠다고 말한다. 신경과 교수는 외래를 잡아두겠으니, 그 저림을 치료해보자고 권한다. 그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저런 사항을 다시 알려주러 온 전공의는 이런 증상이 이전에 있었다고 미리 말을 해주었다면 CT를 찍을 필요도 없었을 거라고 조금 불만인듯 말한다. 그는 약한 정강이 저림 증상 때문에 그의 동네에 있는, 그를 최초에 진료해준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말했듯이 그는 심장의 이상없음을 확인하러 온 것이기에 , 그런데 뜻밖에 뇌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기에 위의 얘기가 관련있는 얘기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퇴원을 하면서부터 그의 머리에는 한 글자만이 떠돈다. MRI. 그는 그것을 받았어야 했다. 받고 싶기도 했다. 아마 그는 그 순간, 전문의의 판단을 믿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종일 마음을 긁어대던 거친 불안으로부터 잠시라도 해방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응급실 문을 나서고 이미 늦은 시각, 택시 한대도 줄서 있지 않은 로비로 나서며 불안은 다시 무겁게 그의 가슴과 머리를 내리누른다

 

 

그는 택시를 불러 타고 삼의 숙소로 돌아온다. 그는 온 방의 불을 켜놓고 가방을 펼친다. 팔 하나 들어올릴 힘이 없다. 그래도 불안만은, 가슴뜀만은, 지치는 법 없이 그의 온몸을 안쪽에서부터 구석구석 먹어치운다. 그는 잠에 들 자신이 없다. 의지와 달리 몹시 피곤했던 하루였던지라 눈이 감기고 있지만, 잠에 들면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다. 자면서는 몸의 어떤 증상도 느낄 수 없으니 오늘 하루 그랬던 것처럼 병원에 달려가지도 못한다. 그는 잠들면 깨어나지 못하리란 확신에 지친 몸을 이불 속에 들이밀면서도 심장에 손을 얹은 채 하루만 버텨 달라고 어른다. 단 몇 시간이면 된다. 짐은 대충 싸고, 그를 구원할 이들이 있는 육지로 되돌아가는 과정까지만 몸이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는 불을 켜둔 채 새우잠에 든다. 유쾌한 예능프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다 깨다, 깨면 살았구나, 느끼며 끊어끊어 두어 시간을 잔다

 

 

새벽에 일어나버린 그는 못 싼 짐을 제법 이것저것 챙기며 밤새 죽어버리지 않았음에 조금의 여유를 찾는다.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면 그의 쓰러짐에 대처해줄 사람이 있는 거니까. 평소 여행 짐싸기의 달인이라고까지 말할 만한 그의 꼼꼼함에 할애할 에너지가 없어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짐을 싸고, 당이 떨어지면 그것대로 또 문제가 되니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을 입에 밀어넣고 택시를 부른다. 공항, 전염병의 시대에 온갖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는 공항에서 그는 안정감을 느낀다. 마스크는 완벽하게 착용하고 손소독제도 보이는 대로 바른다. 갑자기 예약한 탓에 비행기의 맨 뒷자락에 앉은 그는 창문쪽으로 시선을 둔 채 사람들을 외면한다

 

드디어 그는 육지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는 늘어지면서 새로운 기분을 만끽한다. 공항을 거쳐온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대로 혼자 사는 집으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불가능하다. 그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씻기 전에는 만지지 말라고 말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는 밥을 먹는다. 제법 많이 먹는다. 같이 먹어도 되는 것일까, 생각한다. 일주일 동안 주의하자고 마음먹는다. 몸에서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는다. 편하게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점이 진짜 전투의 서막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잠깐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만은 그저,  육지로 돌아온 그 날만은 이루지 못했던 잠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을 내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하루 잠을 청한 그 다음 날, 그는 홀연히 전장으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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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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