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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16. 15:50

 

기억해?

 

 

그의 뇌는 MRI를 잊지 않고 있었어.

다음 날, 그는 밥을 잘 삼키지 못했어. 왜냐하면 팔다리에, 왼쪽에, 사이드에 다시 미세한 저림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 그게 실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는 그제야 가족에게 솔직히 실은, 

이렇게 급히 날아온 까닭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충 말해

그래서 응급실에 다녀와야겠다고, 가서 MRI를 찍고 편해져야겠다고 말이야

그의 가족은 그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야

가족은 별 말 없이 다른 가족에게 차로 그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주라고 말하지

 

 

그는 MRI가 필요했을 뿐이야. 거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게 확실하지만, 그 '거의'를 제거하는 게 그의 삶의 키워드인지도 모르겠어

 

 

3월은 아직 추웠어. 섬처럼 아이러니하고 아름다운 볕따윈 없었어

전염병으로 방역과 예방이 강화된 대학병원 응급실의 입구는 실내에 차려져 있지 않았어

추위에 떨며 그는 지시한 대로 작성할 것을 작성하고 무작정 기다렸지

비닐로 천막을 만들고 히터를 가져다둔, 사람 한 두명이 왔다갔다 하는 그 풍경은 전염병으로 초토화된 현장을 묘사하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렸지

 

오랜 기다림 끝에 그는 선별진료소로 가게 됐어. 그는 알러지성 비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늘 콧물을 흘려대거든. 아마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좀 더 약게 굴었어야 했다고, 이게 전염병의 증상일 리 없는데 너무 솔직히 적어버려서, 들어오고 싶지 않은 선별진료소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

 

그는 엑스레이를 찍었고, 그의 폐가 클리어되어 본격적인 응급실로 배치되기까지 한 시간여를 그 비닐에 머물러야 했지

 

드디어 입장을 허락받은 그는 그처럼 선별진료소를 거쳐온, 즉 전염병에 걸리진 않았지만 호흡기 증상을 지닌 이들이 누워 있는 코호트 격리된 방에 배치돼. 그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

 

뭐, 어떻게 해도 그가 기분 좋아질 리는 없었겠지만

 

 

그를 본 전공의에게 그는 이전날부터의 정황을 설명하고, MRI를 찍고 싶다고 말해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어

 

말하자면 이런 것이지. 그는 응급실로 찾아온 환자고, MRI를 찍으려면 CT촬영을 먼저 해야 하는데,  CT 결과를 보고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MRI 촬영 여부를 결정한다고. 그게 응급실의 프로토콜이라고. 그가 이틀 전에 깨끗한 뇌 CT 결과를 확인한 일은 이곳 의사들 눈에 그 사진을 들이밀기 전엔 소용없는 일이지. 거긴 "응급실"이니까

 

 

그렇다면 CT를 찍어야 하지. 피 검사도 다시 해야 되고. 의사도 별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응급실에서 MRI 오더를 내릴 순 없다고 말했어.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그 순간에도 자신이 미친 인간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대답했어

 

 

커다란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분주했고, 전염병의 창궐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됐어. 그 덕분이었지. 그가 이틀 만에 뇌에 CT 촬영을 하는 일 자체를 회의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촬영 후의 그 간질병 같던 진저리가 그를 두렵게 했어. 일종의 부작용이라 말할 수 있을 테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냥 생각해도, 이틀 전에 깨끗했던 CT 상의 혈관에 무언가 생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니까. 그는 CT를 찍지 않는 게 몹시 피로한 자신의 몸에도 더 나은 일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 이 모든 게 과정이 느릿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나중에 생각해

 

 

그는 전공의를 불러서, CT를 찍고 싶지 않으니 나가게 해달라고 말해. 그렇다고 그가 MRI를 포기했다는 말은 물론 아니야. MRI를 다루는 2차 병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으니까. 의사 역시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실제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퇴원 조치를 밟아주지

 

 

그는 유난히 쌀쌀했던 그 날의 오후, 병원 로비로 나와. 가족이 그를 데리러 오고 있지. 그는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 속으로는 몹시 걱정할 테지만 티를 내지 않는 가족을 돌볼 마음의 여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게 괴로워.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에 속하거든, 그에게는. 그것이 아마 그가 지닌 병의 근본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

 

 

그는 제법 큰 신경외과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폰 검색으로 알아내. 지체없이 그곳으로 향하고, 입구에서 신상정보를 기록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인지 모를 손소독을 하고, 비치돼 있는 혈압측정기로 혈압을 재봤어

 

 

혈압 측정 결과는 놀라웠어. 무려 140에 가까운 숫자를 보게 된 거야. 너무 놀라서, 그는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한번 측정해. 결과는 다르지 않았고. 그의 평소 혈압은 정상범위지만 다소 낮은 90-60이거든. 그도 이성으로는 알고 있겠지. 이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떨어대며 긴장하고 있는데 혈압이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상승의 폭이 자연스러움의 범주에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 그는 의사가 아니니까

 

 

 

그렇게 불안에 떨며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신경외과 전문의와 마주하게 돼. 의사에게 쏟아내듯 지금 상황을 설명한 그는, 뇌 전문 의사가 의례 할법한 수검사를 받아. 손을 움직여보고, 다리를 움직여보고, 작은 나무망치로 두드리는 그런 것들 말이야. 무료하고 사무적인 얼굴의 의사는, 시원스레 MRI를 처방해주어. 이상은 없어 보이지만, 마음의 불안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하겠다고, 마치 이런 환자가 그가 처음이 아닌 게 당연한 일 아니겠냐고 전달하듯 말이야

 

 

그가 다소 늦은 오후에 방문한 덕에 당일 MRI 검사는 마감됐다 해서, 다음 날 가장 이른 시간에 얘약을 마치고 그는 병원을 나와서 가족의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오며 그는 자신이 며칠 사이 너무 많은 병원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어쨌든 MRI가 당시의 그에게는 꼭 필요한 검사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급적 가족들과 멀리 해. 그게 소용이 있는 일이 아닐지라도, 그런 제스처밖에 그는 취할 수 없었어. 그리고 빨리 다음날이 오길 바라면서, 빨리 검사를 마무리하고 우연히 얻게 된 "뇌졸중의 가능성"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주 작고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방을 오갔어. 식사나 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지, 그에겐

 

 

그는 다음 날 집을 나설 예정인 8시 20분까지 잠을 자고 싶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지. 그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의식이 깨어있기를 딱히 바라는 건 아니거든. 의식이 깨어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는 그냥, 그 순간 그는,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지금까지 그가 수없이 품었던, 세상과의 이별을 향한 끌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곳이 그에게 입히는 상처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게 힘겨워 자주 죽음을 꿈꿔 왔는데, 왜 이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 모순보다, MRI가 그의 머리속을 좀더 차지하고 있었지

 

 

그는 이후에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건 아주 긴 사유와 큰 고통이 필요한 과정이 될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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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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