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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7. 21. 08:24

 

그는 여덟 개로 늘어난 저녁 약을 먹고 나면 곧바로 침대에 들어가

 

그의 체력을 좀먹는 가장 큰 원인은 얕고 좀처럼 길게 이어지지 않는 수면일 거야. 하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 큰 불만은 없는 듯 보여. 적어도 잠에 한해서는 말이야. 이상한 말이지. 그가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 거야. 단지, 다섯 번에 걸쳐 약을 삼키고 나면 - 드디어 그는 여덟 알도 다섯 번 이상은 시도하지 않을 수 있게 됐어 - 확실하게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완전히 믿고 있다는 것이야

 

얼마가 지나면 깨고 말든,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에 시달리든 말든, 배꼽시계마냥 비슷한 시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뜨게 되든, 그 한밤의 정중앙에 멍하니 몸을 일으켜야 하든 말든, 

 

적어도 그는 잠을 잘 수가 있으니까

 

 

그는 처음으로 처방받은 약을 먹었던 순간을 자주 떠올려. 하나의 걸음과 하나의 손짓이 나비의 파도처럼 죽음으로 자신을 이끌 거란 선명한 확신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켜켜이 쌓인 몇천겹의 절망을 하나하나 밟으며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야. 절망은 결코 익숙해지는 법이 없고, 움직일 수 없어 주저앉고자 해도 주저앉는 행위까지 절망의 지뢰를 밟는 몸짓이라는 걸, 그는 매분 매초 실감하며 걸음을 옮겨야 했지

 

그는 약을 먹었고, 마법같은 일을 경험해. 그를 옥죄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려나가 버리고 그는 공중에 뜬듯 조금 몽롱해지고, 무엇보다 잠을 자고 싶었어. 그가 섬에서 돌아와 그 약을 만나기까지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는 그 만 년 같은 시간 동안 하루도 잠을 청할 수 없었거든. 지친 몸의 관성이 그도 알지 못하는 나락으로 그의 의식을 숨기는 짧은 시간을 잠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상태로 그는 졸림조차 느끼지 못한 채 몸을 허물어 가고 있었어

 

약은 그를 스르르 미끄러지게 만들었어. 그의 심장을 확실하게 부여잡고 있던 손이 사라지고, 그는 대낮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졸린 느낌"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잠들수 있었지. 그 짧은 낮잠들이 깊고 편하게 그를 감싸주었다는 말은 아니야. 그 잠들은 급하고 얕고 절실했지. 하지만 질이 좋지 않더라도 그건 잠의 범주에 포함된 것이었고, 그가 기꺼이 몸을 내맡겼다는 게 중요해

 

 

약을 복용하며 그는 졸림을 되찾았고, 일찍 잠에 들게 됐어. 그리고 흰새벽에 어김없이 깨어나 주위를 살피곤 했지. 그래서 낮에는 낮잠을 자지 않고서는 몸이 견뎌내지 못하는 일련의 패턴이 정착되어 버렸어. 처음에 그는 신체의 습관대로 낮잠에 드는 일을 경계했지. 종일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망설이면서도, 평생을 다섯 시간 이상 잠드는 법 없이 살아온 몸의 버릇이 낮잠을 회의했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약의 처방자는 몸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조언했어. 어차피 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그 뒤로 그는 졸음이 몰려오면 그게 오전이든 오후든, 기꺼이 침대에 기어들어가 시간을 세는 법 없이 곧바로 잠에 드는 거야

 

 

수면의 질에 대해서 그는 깊게 고민하지 않아. 약의 처방자는 그 점을 고민하는 듯해. 그래서 여러 약을 주면서 깨지 않는 잠을 잘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 같아. 그는 여전히 잠에서 깨고 수많은 악몽 속을 헤매고 피로한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지만,

 

그래도 그는 잠을 자고 있어. 그 점만이 그에게 중요한 것 같아. 심장을 부여잡고, 수마를 막아낸 온몸을 덜덜 떨며 잠들지 못했던 시간을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상, 그는 지금의 상태도 괜찮아. 약을 먹으면 확실하게 잠들 수 있어

 

 

그래서 처음, 약의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금 찾아오는 불안에 그는 조금 더 겁을 먹었는지도 몰라. 복용의 이음새가 생명줄이라도 되는듯 시간을 지켜 약을 먹으면서도, 그는 이대로 약 없이 살 수 없게 되면, 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 우스운 일이라고, 그는 곧바로 생각했어. 그런 걱정을 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도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면, 아마도 그는 약 없이 살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들은 조언했지. 몸이 약을 원하면 약을 먹으라고. 그러기 위해 약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덟 개째의 약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느끼게 됐어. 한밤중 깨어나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여섯 개 시절과 비교해, 그는 여전히 악몽 속에 깨어나긴 하지만 거의 곧바로 새 잠을 청하는 날들을 늘려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 몸은 아직 피로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생각해. 기꺼이 불을 끄고 침대를 파고들 수 있는 행위가 멈추지 않기를, 그는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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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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