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어서 일어나 화장실 가다가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인 까닭은 넘어질 때의 기억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아마 수초에서 수십초 정신을 잃은 것 같다
눈을 뜨고 자빠져 있음을 인식하자마자 후두부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건 부러진 거야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통증이었다
동시다발로 광대뼈와 무릎에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짐. 옆구리 부근은 어긋난 느낌이었고
머리를 다치면 그렇듯 잠시 의식이 명확치 못해 부모님 집에 있는 줄 알고 엄마를 고래고래 부름
곧 혼자 있는 집임을 깨달았고 머리를 열심히 만져주며 고통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일어나보니 일어나지고 누워보니 누워지고 잠도 와서 그냥 잠
아침에 일어나 앉아보니 온몸이 삐그덕대고 충격받은 부위에 둔한 통증이 남아 있음
샤워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옆구리에 피멍이 진하게 들어 있음. 그런 몰골은 또 처음 봄
어떻게 넘어져야 뒷머리와 옆구리와 무릎에 동시다발로 상처를 입을 수 있는지 상상하기를 거부했다
다행이랄지 저림이나 구토 등 좀 더 심각한 증상은 없어서 밥먹고 힘내자는 의미에서 밥을 많이 먹음
그래도 병원엔 갔다
신경외과를 가고 싶은데 다니던 데는 딴 도시라 일단 다니던 정형외과에 감
뭐 이런저런 검사에 과별로 세 명의 의사를 만나 같은 얘기를 네번쯤 반복함
뼈는 안 부러졌고, 인대도 이상없고, 옆구리는 사실 물렁뼈 부분이라 엑스레이로 금갔는지 알 수 없다 함
약 일주일 먹어보고 그래도 아프면 또 보는 걸로
삼일째 먹는데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자빠져 머리깨져 죽는다는 게 아주 아주 나이많은 독거노인에게 발생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니면 내가 그런 주의가 필요할 만큼의 나이에 도달했는지도
아무튼 알러지성 결막염에, 비타민D 부족증에 변비, 그리고 뭐 지병에 등등 해서 하루에 약을 삼십 개쯤 삼키는 것 같다
약 먹기 위해 먹는 물이 배부르다
어둠, 장애물, 비몽사몽, 미끄러짐의 콤보를 조심하시오
머리 목 옆구리 무릎 라인으로 이어지는 부상이라 온몸이 삐그덕거린다
내 무의식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시 밤중에 깨는 걸 거부할까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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