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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28. 15:00

 

 

그렇게 그는 인내의 밤을 버티고 아침을 맞이해

 

그의 텅 빈 위장은 무엇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그는 빨리 병원에 가고 싶을 뿐이야

 

그는 지정된 시간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해. 오전이라 고려한 사항들이 그를 방해하지 않았거든

 

물론 그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

 

줄곧 접수가 시작되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에게 일어난 작은 해프닝은 이런 것

 

접수처에 갈 게 아니라 검사실로 미리 가 있어야 했는데, 그는 어제 진료 후 안내를 해준 간호사의 말, 즉 접수를 하고 검사실로 올라가면 된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지. 생각해 보면 8시 5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9시에 오픈된 접수대를 기다린 건 철두철미한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일이야. 말하자면, 그런 일일함에 신경을 기울일 에너지가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어

 

뒤늦게 검사실에서 전화를 걸어왔단 사실을 알고, 급히 다른 층으로 향한 그는 이미 그의 다음 차례 환자가 검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지. 그는 드물에 큰 짜증이 났어.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입 안으로 무엇도 집어넣지 못한 상태로 일찌감치 병원에 도착했는데, 간호사의 잘못된 인도로 30분을 밀리게 됐으니 말이야. 혼란스럽게 부서진 그의 머릿속 내지 가슴속 상태로 미루어, 그가 다소 큰 소리로 왜 가이드를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신경질을 부린 것은 한번 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어. 말했듯, 그는 아무런 여유가 없는 상태거든

 

 

다행인지 무언지, 다른 환자의 검사가 9시 전에 시작된 덕에 그는 예상보다 빠른 콜을 받게 돼. 그리고 그는 드디어 뇌 MRI를 찍지. 꽉 채운 30분이 걸린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어. 물론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바라지만, 이것이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납득하고 있거든. 30분이든 1시간이든, 이 과정 없이 그는 결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 응당 거치겠다는 마음인 거지

 

 

MRI는 쉽지 않았어. 좁고 길고 흰 통 안에 빨려들어간 그는,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완전히 고정된 상태로 눈을 감은 그는, 첫 5분이 지난 뒤 답답함을 거쳐 새로운 불안을 얻게 되지. 폐소공포증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견디기 어려운 공포, 호흡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그를 괴롭혀. 이상한 일이야. 그는 불안을 제거하는 과정, 그 모든 과정은 공포 없이, 비교적 용감하게 치뤄내는 편이거든. 30분이라는 시간의 압박 때문일까. 어쨌든 왜 이러는지 생각할 시간은 없지. 어떻게든 쿵쿵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이제 20여분이 남았을 시간을 차분히 견뎌야 하지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인지, 앞으로도 15분은 남았다고 느낀 시점에 검사는 끝이 나.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는 안도는 0.5초 정도 그의 몸에 머물고 사라지지. 그는 어제의 진료실 앞에서 긴장을 풀려고 애쓰며 차례를 기다려. 이윽고 그의 이름이 호명되고 그는 후다닥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무얼 얻었겠어?

 

그의 뇌는, 그의 뇌 혈관은 완벽하게 멀쩡하지. 이상한 곳도, 조금이라도 좁아진 곳도 하나 없이 깨끗하지. 의사는 이제 걱정 없이 돌아갈 수 있겠냐고 가볍게 말하지. 여전히 무료한 표정으로 말이야.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재빨리 병원을 나오지. 그는 다시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며,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그는 밥을 먹고, 가족의 짧은 외출에 따라나서기까지 해. 그에게 뇌졸중의 전조 따위는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거야. 쉽게도 불안감을 그러쥐는, 꼼짝없이 매혹되는 그의 유약한 정신이 또다시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친 것뿐이지

 

 

 

이제 그는 잠에 들어야 하고, 제때 배고픔을 느껴야 하며, 시간을 때울 때 열중하곤 하는 폰 게임의 하트가 차는 시간에 맞춰 게임을 해야 하지. 책을 읽고, 계획해둔 일에 착수해야 하지. 늘 그의 불안을 걱정하던 친구에게 괜찮다고 말해야 하지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괜찮지 않았거든

 

 

그는 당황하지. 이전의 경험대로라면, 그는 몸상태에 의심이 들 때 가장 위중한 병을 가정하고 병원을 전전한 뒤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지

 

문제는 그 마음의 안정이 그에게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원래도 깊이 잠기지 못하는 그의 수면은 두근대는 심장 탓에 밤새 너울거리고, 억지로 들이미는 음식은 모래알 같았으며, 5분도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지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어. 이미 말한 바 있듯이, 그의 머릿속에 잠시 숨어 있던 "다음 차례"의 전투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 그게 무엇일지 잠시 짐작해 보든지

 

 

 

 

 

그것은 그가 너무 많은 병원을 거쳐왔다는 사실이야. 전염병 창궐의 시대에, 다니던 병원도 그만두는 시국에, 그는 이미 병원 네 군데를 다녀왔고, 그 중 두 곳은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응급실이었지

 

 

 

그래서 시작된 거야. 그가 열을 재고, 가족들과 밥을 따로 먹는 시기가. 이번 그의 두려움은, 그가 전염병에 노출되는 게 아니었어. 자신은 전염병에 걸리든 말든, 걸려서 죽든 말든, 가족에게만은 옮기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어. 그는 섬에서 나와 혼자 사는 집에 갈 수도 있었어. 물론 그땐 혼자 지내는 게 불가능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 옵션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말뚝처럼 단단하지

 

 

그는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려오지. 가족이 나 때문에 어떻게 된다면, 그는 스스로를 사형시킬 것이었어. 자살이 아니야. 사형이어야 하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며칠이 걸린다고 하니 그만큼 기다려보아야 한다고 그의 이성이 간신히 말을 했어. 그때라도 그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겠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어. 혼자 되는 순간 그는 바로 쓰러질 것이었어. 쓰러지든 말든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먹을 수 없었어. 몹시 쇠약해진 그의 정신은, 어찌할 바를 몰라 가늘게 가늘게 찢어지고 있었지

 

 

그는 일주일을 생각해. 일주일 동안 열이 나지 않고 목이 아프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그동안 화장실도 식사도 따로 하기로 결심하지. 그의 두려움은, 그의 목이 간질대고 있다는 데서부터 비롯되었으니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그는 이전에도 자주 이런 일을 경험했지만, 그런 게 이 시점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건 잘 알 만하지. 그는 뜨거운 물을 수시로 마시고, 수시로 열을 재지. 가족이 그의 강박을 지적할 땐 씩 웃기만 하지.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잔뜩 걱정시키고 있으면서 걱정을 덜 작정으로 말이야

 

 

 

 

그는 또다시, 빨리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지. 밥을 삼킬 수 없어 무자비하게 살이 내리고 있었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지. 그는 어쨌든 언젠가는 끝날 그 날을 기다리며, 체온계와 알콜스왑을 손에 꼭 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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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23. 16:33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을 겪는 게 처음은 아니다

 

그는 그 과정이 언젠가 마무리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는 살 수 없을 테고, 살 수 없음 역시 또 다른 마무리가 될 터이니

 

 

그는 그것이 살면서 치르는 일종의 세금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억울하지는 않다. 대부분 그가 자초한 일이고, 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그의 잠재의식 내지 신경전달물질이 벌인 일일 가능성이 높으니 어쨌든 그에게 속한 것들이다. 그 연원을 찾는 게 중요할까? 그 연원을 찾아내더라도, 세금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냥 그 시간이나 과정이 길지 않기를, 그가 참아낼 수 있을 만큼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매초 매분을 버틴다. 그러면서도, 이대로 죽어도 괜찮지 않나, 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다. 그는 현재의 삶에 미련이 없고 아쉬움도 없다. 가족을 향한 우려만이 그가 급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공포는 삶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가 지니기에는 과하지 아니한가

 

 

그는 세상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자비하고 거칠며, 그것을 버텨내기에 스스로가 지나치게 유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죽음에 매혹된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하는 마음 자체가 삶에 대한 욕망임을 그는 아주 최근에 알게 된다. 그는 자주 눈물 흘리고 맨몸에 그어진 상처를 자주 드러내 보였지만, 그것과 죽음의 연결고리는 멀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트리거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날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라는 말은 실제 죽음을 행하는 일과는 매우 다르다. 그 마음이 의식의 모든 것이 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어떤 일, 또는 사건, 말 등이 무엇인지 그는 생각해본다. 그리고 실제 죽음을 행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상상만으로 형상화하는 데 한게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어쨌든 그가 죽음의 궤적을 한발 한발 좇을 때 언제나 거기서 주춤대다 멈춘다. 결국 그의 머릿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죽음은 한번도 죽음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들의 것만큼이나 피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여러 병원을 거쳐오게 했던 그 공포, 죽음을 향한 공포는 평범하고 말쑥하고 흔한 것이다. 죽음을 머릿속에 지니고 있다고, 그 공포가 타인의 공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 또한, 그는 인정해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이런 식의 죽음"이 싫은 것이라고 말을 보태보아야 한다. "급사"가 싫다고,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어버리는 게 싫은 거라고 말해야 한다. 그게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삶에 남은 미련이나, 아쉬움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욕망의 존재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그 순간의 그에게 그 사유는 끊임없이 떠올랐지만 해결을 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몸에 남은 미약한 에너지가 그 사유를 진행시키는 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MRI를 찍어야 했고, 그 결과로 편해지는 과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MRI가 보여줄 흠잡을 곳 없는 머릿속이 그에게 안정을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을,

그날 밤의 그는 꼭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명민하고 재바른 그의 뇌세포가 이미 그게 아님을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지만, 그 경고는 그 순간의 그에게는 너무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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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16. 15:50

 

기억해?

 

 

그의 뇌는 MRI를 잊지 않고 있었어.

다음 날, 그는 밥을 잘 삼키지 못했어. 왜냐하면 팔다리에, 왼쪽에, 사이드에 다시 미세한 저림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 그게 실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는 그제야 가족에게 솔직히 실은, 

이렇게 급히 날아온 까닭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충 말해

그래서 응급실에 다녀와야겠다고, 가서 MRI를 찍고 편해져야겠다고 말이야

그의 가족은 그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야

가족은 별 말 없이 다른 가족에게 차로 그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주라고 말하지

 

 

그는 MRI가 필요했을 뿐이야. 거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게 확실하지만, 그 '거의'를 제거하는 게 그의 삶의 키워드인지도 모르겠어

 

 

3월은 아직 추웠어. 섬처럼 아이러니하고 아름다운 볕따윈 없었어

전염병으로 방역과 예방이 강화된 대학병원 응급실의 입구는 실내에 차려져 있지 않았어

추위에 떨며 그는 지시한 대로 작성할 것을 작성하고 무작정 기다렸지

비닐로 천막을 만들고 히터를 가져다둔, 사람 한 두명이 왔다갔다 하는 그 풍경은 전염병으로 초토화된 현장을 묘사하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렸지

 

오랜 기다림 끝에 그는 선별진료소로 가게 됐어. 그는 알러지성 비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늘 콧물을 흘려대거든. 아마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좀 더 약게 굴었어야 했다고, 이게 전염병의 증상일 리 없는데 너무 솔직히 적어버려서, 들어오고 싶지 않은 선별진료소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

 

그는 엑스레이를 찍었고, 그의 폐가 클리어되어 본격적인 응급실로 배치되기까지 한 시간여를 그 비닐에 머물러야 했지

 

드디어 입장을 허락받은 그는 그처럼 선별진료소를 거쳐온, 즉 전염병에 걸리진 않았지만 호흡기 증상을 지닌 이들이 누워 있는 코호트 격리된 방에 배치돼. 그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

 

뭐, 어떻게 해도 그가 기분 좋아질 리는 없었겠지만

 

 

그를 본 전공의에게 그는 이전날부터의 정황을 설명하고, MRI를 찍고 싶다고 말해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어

 

말하자면 이런 것이지. 그는 응급실로 찾아온 환자고, MRI를 찍으려면 CT촬영을 먼저 해야 하는데,  CT 결과를 보고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MRI 촬영 여부를 결정한다고. 그게 응급실의 프로토콜이라고. 그가 이틀 전에 깨끗한 뇌 CT 결과를 확인한 일은 이곳 의사들 눈에 그 사진을 들이밀기 전엔 소용없는 일이지. 거긴 "응급실"이니까

 

 

그렇다면 CT를 찍어야 하지. 피 검사도 다시 해야 되고. 의사도 별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응급실에서 MRI 오더를 내릴 순 없다고 말했어.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그 순간에도 자신이 미친 인간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대답했어

 

 

커다란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분주했고, 전염병의 창궐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됐어. 그 덕분이었지. 그가 이틀 만에 뇌에 CT 촬영을 하는 일 자체를 회의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촬영 후의 그 간질병 같던 진저리가 그를 두렵게 했어. 일종의 부작용이라 말할 수 있을 테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냥 생각해도, 이틀 전에 깨끗했던 CT 상의 혈관에 무언가 생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니까. 그는 CT를 찍지 않는 게 몹시 피로한 자신의 몸에도 더 나은 일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 이 모든 게 과정이 느릿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나중에 생각해

 

 

그는 전공의를 불러서, CT를 찍고 싶지 않으니 나가게 해달라고 말해. 그렇다고 그가 MRI를 포기했다는 말은 물론 아니야. MRI를 다루는 2차 병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으니까. 의사 역시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실제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퇴원 조치를 밟아주지

 

 

그는 유난히 쌀쌀했던 그 날의 오후, 병원 로비로 나와. 가족이 그를 데리러 오고 있지. 그는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 속으로는 몹시 걱정할 테지만 티를 내지 않는 가족을 돌볼 마음의 여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게 괴로워.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에 속하거든, 그에게는. 그것이 아마 그가 지닌 병의 근본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

 

 

그는 제법 큰 신경외과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폰 검색으로 알아내. 지체없이 그곳으로 향하고, 입구에서 신상정보를 기록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인지 모를 손소독을 하고, 비치돼 있는 혈압측정기로 혈압을 재봤어

 

 

혈압 측정 결과는 놀라웠어. 무려 140에 가까운 숫자를 보게 된 거야. 너무 놀라서, 그는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한번 측정해. 결과는 다르지 않았고. 그의 평소 혈압은 정상범위지만 다소 낮은 90-60이거든. 그도 이성으로는 알고 있겠지. 이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떨어대며 긴장하고 있는데 혈압이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상승의 폭이 자연스러움의 범주에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 그는 의사가 아니니까

 

 

 

그렇게 불안에 떨며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신경외과 전문의와 마주하게 돼. 의사에게 쏟아내듯 지금 상황을 설명한 그는, 뇌 전문 의사가 의례 할법한 수검사를 받아. 손을 움직여보고, 다리를 움직여보고, 작은 나무망치로 두드리는 그런 것들 말이야. 무료하고 사무적인 얼굴의 의사는, 시원스레 MRI를 처방해주어. 이상은 없어 보이지만, 마음의 불안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하겠다고, 마치 이런 환자가 그가 처음이 아닌 게 당연한 일 아니겠냐고 전달하듯 말이야

 

 

그가 다소 늦은 오후에 방문한 덕에 당일 MRI 검사는 마감됐다 해서, 다음 날 가장 이른 시간에 얘약을 마치고 그는 병원을 나와서 가족의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오며 그는 자신이 며칠 사이 너무 많은 병원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어쨌든 MRI가 당시의 그에게는 꼭 필요한 검사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급적 가족들과 멀리 해. 그게 소용이 있는 일이 아닐지라도, 그런 제스처밖에 그는 취할 수 없었어. 그리고 빨리 다음날이 오길 바라면서, 빨리 검사를 마무리하고 우연히 얻게 된 "뇌졸중의 가능성"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주 작고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방을 오갔어. 식사나 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지, 그에겐

 

 

그는 다음 날 집을 나설 예정인 8시 20분까지 잠을 자고 싶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지. 그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의식이 깨어있기를 딱히 바라는 건 아니거든. 의식이 깨어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는 그냥, 그 순간 그는,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지금까지 그가 수없이 품었던, 세상과의 이별을 향한 끌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곳이 그에게 입히는 상처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게 힘겨워 자주 죽음을 꿈꿔 왔는데, 왜 이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 모순보다, MRI가 그의 머리속을 좀더 차지하고 있었지

 

 

그는 이후에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건 아주 긴 사유와 큰 고통이 필요한 과정이 될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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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8. 5. 08:20

 

"예...에?"

 

그는 놀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잠깐 이 상황이 시트콤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불편함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그는 전공의로부터 본인의 증상이 "뇌졸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동안 응급실에 몇번 들어간 적 있는 그에게는 생전 꿈도 꿔본 적 없는 피드백. 그는 심장 이상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거하고자 가장 큰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달려온 것이고 혹 그런 증상이 있으면 심장검사를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면서 서술을 한 것뿐인데

 

갑자기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그 이유를 의사는 친절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응급실에서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뇌졸중과 심근경색이라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또는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아마 그 때였을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 일종의 안정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는 더 큰 불안, 상상해본 적 없는 불안을 떠안은 채 간호사가 지정해준 침상에 짐을 내리고 커튼을 두른 채 환자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드러눕는다. 간호사와 의사가 차례로 찾아와 증상을 다시 물어보고 채혈을 하고 혈압을 잰다. 사실 그가 증상이라 말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인지 그가 의심하고 있는 것들이다. 손끝과 팔, 정강이에 저린 느낌이 있지만 그는 그게 불안에서 비롯된 느낌인지, 실제 증상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말은 응급실에서 할 수 없다. 이미 또 다른 질병, 머리와 관련된 질병의 가능성이 그의 품 안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낙담에 빠져있지만 병원이라 걱정을 덜 수 있다. 그게 다이던 시절은 이미 끝나버렸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신경과 교수에게 콜이 간 것이 그의 귀에 들리고, 의논 끝에 그에게 CT촬영 진단이 내려진다. 그는 예전에 CT를 찍어본 적이 있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조영제의 느낌이 좀 묘했다는 것 정도만이 기억난다. 어쨌든 그때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기에 그는 순순히 CT촬영에 동의한다. 다시 한번 심전도도 하고, 또 혈액검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는 무표정으로 잠자코 누워 있었지만, 뇌의 질병이 입에 오르내린 것이 그의 저림 증상이 한쪽, 즉 왼쪽에만 나타났기 떄문이라는 사실을 이런저런 대화로부터 캐치한다

 

그런 거였군, 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느낌이든 뭐든 그게 사실이기도 해서 그는 머리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한다. 아니, 이제 그런 얘기를 들은 이상, 머리 검사 없이 병원을 빠져나갈 수는 없게 됐다. 그는 새로운 질병을 얻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조영제를 맞고 CT촬영을 한다. 옛 기억과 달리 온 몸의 혈관이 끓어오르듯 뜨겁다. 검사는 금방 끝났고, 다시 응급실의 병상으로 돌아오는 그의 몸이 진저리를 친다. "추우세요?" 라고 묻지만, 추운듯도 싶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그의 몸이 반사작용을 일으키듯 의지와 상관없이 진저리쳐지고 있다. 마치 간질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제멋대로 덜덜덜거리고 우두두두,후루루룩 움직인다. 그는 조영제의 부작용인가 싶어 의료진에 묻지만 그런 종류의 부작용은 드물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5분 가량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데 움직여지는 몸을 제어하지 못해 또다른 기억을 각인한다. 나는 CT는 안될지도 모르겠다

 

 

몸이 진정되고 그는 두어 시간 걸릴 거라는 말에 수액을 꽂은 채 누워 있다. 병실을 둘러보면 나이든 노인들이 보호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한순간 이 모든 게 재미없는 농담같고, 그는 그 순간의 느낌들이 싫다. 오후부터 밤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촌각을 다투는 급성질환이라면 벌써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는 늘 죽어도 상관없고 여한도 미련도 없다고 여겨왔지만 스스로 상정한 죽음의 가능성 앞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그것이 급사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인지 판단하기를 포기한다

 

 

 

두 시간이 한참 안 된 시점, 신경과 교수가 직접 그의 병상을 찾아온다. 그는 친절한 말투로 CT상 혈관엔 아무 문제도 보이지 않고, 심전도도 피검사도 이상 없다고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CT는 미세한 혈관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미세한 혈관까지 완전히 체크하려면 MRI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허나 자신의 소견으로는 굳이 MRI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젊은 사람들이 팔다리 저림 증세로 외래를 많이 보러 온다고 말한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면 MRI를 찍는 걸 말리지는 않겠다고 덧붙인다

 

그는 일단 자신이 우려했던 심장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을 얻는다. 전문의의 소견에 따르는 게 합리적인 일이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감추기보다 말해버린 그 MRI, 그것을 찍으면 그는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그가 한 것은 당시가 아니다. 몇년 같은 며칠 후, 후회하며 그가 한 생각이고, 신경과 교수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는 그럼 퇴원하겠다고 말한다. 신경과 교수는 외래를 잡아두겠으니, 그 저림을 치료해보자고 권한다. 그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저런 사항을 다시 알려주러 온 전공의는 이런 증상이 이전에 있었다고 미리 말을 해주었다면 CT를 찍을 필요도 없었을 거라고 조금 불만인듯 말한다. 그는 약한 정강이 저림 증상 때문에 그의 동네에 있는, 그를 최초에 진료해준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말했듯이 그는 심장의 이상없음을 확인하러 온 것이기에 , 그런데 뜻밖에 뇌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기에 위의 얘기가 관련있는 얘기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퇴원을 하면서부터 그의 머리에는 한 글자만이 떠돈다. MRI. 그는 그것을 받았어야 했다. 받고 싶기도 했다. 아마 그는 그 순간, 전문의의 판단을 믿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종일 마음을 긁어대던 거친 불안으로부터 잠시라도 해방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응급실 문을 나서고 이미 늦은 시각, 택시 한대도 줄서 있지 않은 로비로 나서며 불안은 다시 무겁게 그의 가슴과 머리를 내리누른다

 

 

그는 택시를 불러 타고 삼의 숙소로 돌아온다. 그는 온 방의 불을 켜놓고 가방을 펼친다. 팔 하나 들어올릴 힘이 없다. 그래도 불안만은, 가슴뜀만은, 지치는 법 없이 그의 온몸을 안쪽에서부터 구석구석 먹어치운다. 그는 잠에 들 자신이 없다. 의지와 달리 몹시 피곤했던 하루였던지라 눈이 감기고 있지만, 잠에 들면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다. 자면서는 몸의 어떤 증상도 느낄 수 없으니 오늘 하루 그랬던 것처럼 병원에 달려가지도 못한다. 그는 잠들면 깨어나지 못하리란 확신에 지친 몸을 이불 속에 들이밀면서도 심장에 손을 얹은 채 하루만 버텨 달라고 어른다. 단 몇 시간이면 된다. 짐은 대충 싸고, 그를 구원할 이들이 있는 육지로 되돌아가는 과정까지만 몸이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는 불을 켜둔 채 새우잠에 든다. 유쾌한 예능프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다 깨다, 깨면 살았구나, 느끼며 끊어끊어 두어 시간을 잔다

 

 

새벽에 일어나버린 그는 못 싼 짐을 제법 이것저것 챙기며 밤새 죽어버리지 않았음에 조금의 여유를 찾는다.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면 그의 쓰러짐에 대처해줄 사람이 있는 거니까. 평소 여행 짐싸기의 달인이라고까지 말할 만한 그의 꼼꼼함에 할애할 에너지가 없어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짐을 싸고, 당이 떨어지면 그것대로 또 문제가 되니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을 입에 밀어넣고 택시를 부른다. 공항, 전염병의 시대에 온갖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는 공항에서 그는 안정감을 느낀다. 마스크는 완벽하게 착용하고 손소독제도 보이는 대로 바른다. 갑자기 예약한 탓에 비행기의 맨 뒷자락에 앉은 그는 창문쪽으로 시선을 둔 채 사람들을 외면한다

 

드디어 그는 육지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는 늘어지면서 새로운 기분을 만끽한다. 공항을 거쳐온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대로 혼자 사는 집으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불가능하다. 그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씻기 전에는 만지지 말라고 말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는 밥을 먹는다. 제법 많이 먹는다. 같이 먹어도 되는 것일까, 생각한다. 일주일 동안 주의하자고 마음먹는다. 몸에서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는다. 편하게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점이 진짜 전투의 서막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잠깐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만은 그저,  육지로 돌아온 그 날만은 이루지 못했던 잠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을 내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하루 잠을 청한 그 다음 날, 그는 홀연히 전장으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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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7. 21. 08:24

 

그는 여덟 개로 늘어난 저녁 약을 먹고 나면 곧바로 침대에 들어가

 

그의 체력을 좀먹는 가장 큰 원인은 얕고 좀처럼 길게 이어지지 않는 수면일 거야. 하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 큰 불만은 없는 듯 보여. 적어도 잠에 한해서는 말이야. 이상한 말이지. 그가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 거야. 단지, 다섯 번에 걸쳐 약을 삼키고 나면 - 드디어 그는 여덟 알도 다섯 번 이상은 시도하지 않을 수 있게 됐어 - 확실하게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완전히 믿고 있다는 것이야

 

얼마가 지나면 깨고 말든,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에 시달리든 말든, 배꼽시계마냥 비슷한 시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뜨게 되든, 그 한밤의 정중앙에 멍하니 몸을 일으켜야 하든 말든, 

 

적어도 그는 잠을 잘 수가 있으니까

 

 

그는 처음으로 처방받은 약을 먹었던 순간을 자주 떠올려. 하나의 걸음과 하나의 손짓이 나비의 파도처럼 죽음으로 자신을 이끌 거란 선명한 확신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켜켜이 쌓인 몇천겹의 절망을 하나하나 밟으며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야. 절망은 결코 익숙해지는 법이 없고, 움직일 수 없어 주저앉고자 해도 주저앉는 행위까지 절망의 지뢰를 밟는 몸짓이라는 걸, 그는 매분 매초 실감하며 걸음을 옮겨야 했지

 

그는 약을 먹었고, 마법같은 일을 경험해. 그를 옥죄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려나가 버리고 그는 공중에 뜬듯 조금 몽롱해지고, 무엇보다 잠을 자고 싶었어. 그가 섬에서 돌아와 그 약을 만나기까지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는 그 만 년 같은 시간 동안 하루도 잠을 청할 수 없었거든. 지친 몸의 관성이 그도 알지 못하는 나락으로 그의 의식을 숨기는 짧은 시간을 잠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상태로 그는 졸림조차 느끼지 못한 채 몸을 허물어 가고 있었어

 

약은 그를 스르르 미끄러지게 만들었어. 그의 심장을 확실하게 부여잡고 있던 손이 사라지고, 그는 대낮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졸린 느낌"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잠들수 있었지. 그 짧은 낮잠들이 깊고 편하게 그를 감싸주었다는 말은 아니야. 그 잠들은 급하고 얕고 절실했지. 하지만 질이 좋지 않더라도 그건 잠의 범주에 포함된 것이었고, 그가 기꺼이 몸을 내맡겼다는 게 중요해

 

 

약을 복용하며 그는 졸림을 되찾았고, 일찍 잠에 들게 됐어. 그리고 흰새벽에 어김없이 깨어나 주위를 살피곤 했지. 그래서 낮에는 낮잠을 자지 않고서는 몸이 견뎌내지 못하는 일련의 패턴이 정착되어 버렸어. 처음에 그는 신체의 습관대로 낮잠에 드는 일을 경계했지. 종일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망설이면서도, 평생을 다섯 시간 이상 잠드는 법 없이 살아온 몸의 버릇이 낮잠을 회의했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약의 처방자는 몸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조언했어. 어차피 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그 뒤로 그는 졸음이 몰려오면 그게 오전이든 오후든, 기꺼이 침대에 기어들어가 시간을 세는 법 없이 곧바로 잠에 드는 거야

 

 

수면의 질에 대해서 그는 깊게 고민하지 않아. 약의 처방자는 그 점을 고민하는 듯해. 그래서 여러 약을 주면서 깨지 않는 잠을 잘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 같아. 그는 여전히 잠에서 깨고 수많은 악몽 속을 헤매고 피로한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지만,

 

그래도 그는 잠을 자고 있어. 그 점만이 그에게 중요한 것 같아. 심장을 부여잡고, 수마를 막아낸 온몸을 덜덜 떨며 잠들지 못했던 시간을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상, 그는 지금의 상태도 괜찮아. 약을 먹으면 확실하게 잠들 수 있어

 

 

그래서 처음, 약의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금 찾아오는 불안에 그는 조금 더 겁을 먹었는지도 몰라. 복용의 이음새가 생명줄이라도 되는듯 시간을 지켜 약을 먹으면서도, 그는 이대로 약 없이 살 수 없게 되면, 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 우스운 일이라고, 그는 곧바로 생각했어. 그런 걱정을 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도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면, 아마도 그는 약 없이 살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들은 조언했지. 몸이 약을 원하면 약을 먹으라고. 그러기 위해 약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덟 개째의 약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느끼게 됐어. 한밤중 깨어나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여섯 개 시절과 비교해, 그는 여전히 악몽 속에 깨어나긴 하지만 거의 곧바로 새 잠을 청하는 날들을 늘려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 몸은 아직 피로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생각해. 기꺼이 불을 끄고 침대를 파고들 수 있는 행위가 멈추지 않기를, 그는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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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7. 13. 07:08

 

그 날은 이른 봄볕이 따스했다고, 그는 기억해

 

그의 친구가 먼저 떠나고 그는 섭섭함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끼며 남은 날들을 계획했어

끝내 친구와 함께 떠났어야 했다는 생각 한 자락이 내내 지워지지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

아니,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한다고 믿었지

 

 

그는 때때로 그때의 결정을 생각해

친구와 함께 섬을 떠나왔다면, 그래서 혼자 머무르지 않았도 되었다면,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짐을 이끌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 끈기 있게 짐을 풀고 피로한 몸을 뜨거운 물로 적시며 깨는 법 없는 잠을 청했을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야

 

물론 그는 평소에도 잠에서 한번쯤은 늘 깨곤 하지만, 그게 수면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

그는, 친구를 따라나섰다면 그는, 그 모든 비현실적인 고통의 나락에 빠지는 법 없이 날들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어떤 판단도 가능하지 않았던, 0.1초 후에 숨 쉬는 법을 잊을지 모른다는 확신 때문에 숨이 막혀오던 어느 날, 그는 그렇다고 생각했었어. 홀로 남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으로 종잇장 같은 몸이 납작하게 눌리는 경험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야

 

뭐, 그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

 

 

 

 

그는 평소와 같이 일감을 챙겨 집을 나섰고,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장소에 머물며 일을 하고 있었어. 일할 때만 마시는 커피가 좀 진했고, 챙겨 다니는 빵을 조금 먹고 나서였어

 

그게 대단한 전조였던 적은 한번도 없어

그건 그냥 스륵, 다가오고 그는 그 자연스러움에 크게 당황할 뿐이야

 

심장이 조금 덜컥 내려앉았고, 위장병을 지닌 그의 속이 약간 뒤틀리기 시작했고, 그 덕에 머리에 안개가 낀듯 좀 몽롱했어

그 일련의 반응 덕에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지

그때 이미 그는 스스로의 몸을 이성으로 제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어쩌면 그것은 거부인지도 모르겠어. 그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신체 반응을 멋대로 해석하는 일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경향이 있어. 그가 걱정하는 것은 아마, 만에 하나 스스로에게 닥칠 위기상황보다는, 아직 제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멀쩡히 살아있던 기회를 안이함으로 날려버리는 일의 멍청함이야.  그렇게 그는 어리석어지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지 

 

 

그는 재빨리 짐을 챙겨 장소를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어. 운전이 가능할까? 싶긴 했는데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병원에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의 차를 몰고 가는 것이었어. 이 모든 법석이 그의 증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도 알았고. 하지만 그 순간에 그런 인식은 그의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거든. 어쨌든 호흡이 가능했고, 심장이 빨리 뛴다는 사실만을 인지한 채 그는 그가 알고 있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어. 이런 순간에 운전을 할 때 그의 한쪽 손은 핸들에, 한쪽 손은 경동맥을 짚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몇 차레 있었지만, 그는 점점 비현실에 잠겨가면서도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어. 병원은 그가 신뢰하는 의사가 있는 곳이었어. 과도한 근심을 품은 자들의 어리석어보임에 대한 염려 따위는 없었어. 의사를 대면한 그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증상을 설명했어. 그리고 그것만으로 차를 달려 온 이유에 대해, 심장 쪽에 문제가 있으면 이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나이브한척 심각한 걱정을 품은 자를 연기했지

 

신중한 의사는 그의 설명을 하나하나 새겨가며 들었고, 위경련 같지만 그의 염려를 존중해 심전도 검사도 처방했어. 그가 걱정하는 급성 심장병이라면 심전도에 나타난다는 설명을 친절하게 덧붙이면서. 그래서 그는 심전도 검사를 받았지

 

물론 심전도에 이상은 없었어. 의사는 그런 걱정을 다 했느냐고 가볍게 웃었어. 그리고 5분짜리 수액을 맞을 것을 권했어. 그는 마음을 놓았다고 생각했어. 의사가 확인시켜준 사실이니까. 수액을 맞을 때 해프닝이 있었지. 간호사가 팔뚝 혈관에 바늘을 잘못 꽂아 큰 고통이 찾아왔어. 팔 한쪽이 마비되는 고통이었지. 처치가 이루어졌고 팔은 편해졌어. 울음을 터뜨릴듯 미안해하는 신입 간호사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어. 제대로 들어간 바늘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그는 누워 있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것으로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어. 최초 증상 발현 후 시간도 꽤 지나 있었으니까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손에 들고 그는 다소 멀리 세워놓은 차로 다가갔어. 그는 편안했어. 이것이 그동안 그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방식이었거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어. 어제 만들어놓은 음식을 데우고, 빨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지어가지고 온 약을 삼키고 싶었지. 그리고 하루라도 혼자 이곳에 머무는 게 무리라는 사실을 인정했어

 

 

아마 그 순간이었을 거야. 당장 내일 섬을 떠날 수 있는 비행기편을 알아보면서, 그가 신뢰하는 동네의사의 처방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그게 그의 방식이야. 아니지, 그게 그의 병증이야. 한번도 진단받은 적 없지만, 때때로 그를 예측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곤 했던 그 병증의 전형적인 증상이야

 

 

 

이미 그는 정신이 무너지고 있었어. 비행기 편을 알아봐야 하고, 무척 큰 짐이 될 가방을 꾸려야 하고, 무엇보다 큰 병원을 찾아가야 했어. 심장은 내내 뛰고 있었지. 팔과 어깨가 저리고, 다리도 저린 것 같았어. 사실 그는 자신의 신체 반응을 확신할 수 없었어. 정말 아픈 것인지, 아픈 것처럼 느끼는 것인지. 하지만 관계 없지.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섬 안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는 핑계가 될 만한 작은 증상이었으니까. 만약 그가 몸에서 어떤 증상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자신을 속일 수는 없거든. 어쨌든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그는 한시라도 빨리 큰 병원에 가고 싶었어

 

요동치는 가슴과 뇌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여기엔 쉽지 않은 문제가 얽혀 있어. 너무나 다급해진 그는, 차라리 이대로 밤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했어. 짐 따위 내버려두고 신분증과 돈, 폰만 챙겨서 떠나는 것이지. 가족 곁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자신을 보호할 이들이 머무는 곳으로. 짐이야 나중에 가지러 오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그는 밤 비행기를 덜컥 예약해 버렸어.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 그는 간단한 짐을 챙겨 택시를 불렀어. 병원엘 다녀와도 혼자 보내야 하는 밤이 두려울 것 같았거든. 이상한 일이지. 큰 병원에 다녀오면, 그런 종류의 공포는 늘 사라지곤 했는데. 그래서 그가 택시를 타고 최초에 닿은 곳은 공항이었어

 

그리고 그는 택시 안에서 생각을 바꾼 것 같아. 충분히 비이성적인 상태지만, 이대로 덜컹 밤 비행기로 육지에 닿는 것만큼 비이성적일 수는 없다는 이성이 작동을 했거든. 그리하여 공항에서 내린 그는 수속 카운터로 달려가 예약한 비행기를 다음날 오전으로 바꾸고 공항을 나와 다시 택시를 잡아탔어

 

 

이번에는 진짜 병원으로, 그의 무너진 몸과 마음을 돌보아줄 큰 병원으로 택시는 바람같이 달려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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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get it 2020. 6. 23. 09:29

 

그가 저녁에 복용해야 하는 약은 여섯 알이다

 

작고 희고 노란 알약 몇 개는 반절로 잘라져 있다

 

그 약 하나하나의 성분과 효능을 구별할 수는 없지만, 그는 그것이 복용량을 조정하던 시기의 산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알약을 먹는 데 약간의 트러블을 가지고 있다

 

이 약들을 복용하기 이전부터 큰 약들을 잘 삼키지 못해, 실은 효능에 대한 기대감이 제로에 가까운 값비싼 영양제를 충동구매한뒤 처음 두 알인가 세 알을 간신히 삼켜놓곤 손을 놔버렸다. 다시는 영양제를 먹지 않겠구나, 라는 확신과 함께

 

 

아마도 큰 알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식도를 건드리는 느낌, 목에 걸린듯한 그 터치감을 진저리쳐지게 싫어하는 것 같다

 

영양제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비대한 캡슐이라 그럴만도 해 보인다

 

 

그 외 그가 자주 먹는 진통제나 소화제는 크기가 제법 크지만, 워낙 자주 먹어온 탓인지 매끈한게 당의 코팅된 질감이 목구멍과 식도를 건드리는 법이 없어 그런지 삼키는 일이 문제되었던 적은 없다

 

 

 

그가 저녁에 먹는 여섯 알은, 이미 말했듯이 반절로 잘라진 것도 있고, 하여간 크기가 매우 작은 축에 속한다

 

그가 이 여섯 알을 네 번에 나눠 먹게 되기까지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전까지 그는 여섯 알을 삼키기 위헤서, 여섯 번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야 한다면, 여섯 알을 몸 속으로 밀어넣기 위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삼키는 일이 큰 트러블이 되어, 약을 하나하나 씹어서 가루나 곤죽으로 만들어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약의 처방자는,

 

그렇게 먹으면 쓰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물론 쓰지만, 혀끝이 얼얼하고 오랫동안 마비될 정도로 쓰지만, 목에 걸릴지도 모르는 두려움보다 낫다고 대답한다

 

 

 

여섯 알이 아직 네 알이던 시기, 

 

그는 한밤중 그 저녁 몫의 약을 삼키다 희고 둥글납작한 약 하나가 목젖 즈음에 걸리는 경험을 했다

 

급히 켁켁 기침을 해대어 무사히 손바닥으로 다시 뱉어낼 수 있었지만,

 

그는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후로 그는 하루 세 번 약을 먹을 때마다 그 둥글납작한 작디작은 약이 목에 걸리는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상상들의 결말 중 하나는 약이 숨쉬는 길을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약을 씹어 삼키기로 결심했고,

 

그로 인해 심해진 불면 탓인지 아니면 그 모든 사고의 과정 탓인지,

 

그가 저녁에 먹어야 하는 약은 여섯 개로 늘어났다

 

 

 

 

 

지금 그는 다시 약을 삼킬 수 있다

 

덜 수고스럽게 되어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알약이라도, 여섯 개를 한번에 삼키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그는 아침과 점심 몫의 약과 같은 여섯 알 중 세 알은, 한번에 삼킨다

 

그리고 반절로 쪼개져 삐죽삐죽 날카로운 단면이 보이는, 앞의 세 알보다 비교적 큰 흰 약 반쪽짜리는 따로 삼킨다

 

그 약만은 아직도 때로 씹기도 한다

 

그리고 남은 노란색 알약 두 개, 가장 크기가 큰 그 약은 한 알 한 알 두 번에 나눠 삼킨다

 

약을 씹어먹던 시절, 큰 낭패감을 맛보게 했던, 다른 건 몰라도 이 약만은 씹어먹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단단하고 지독하게 쓴 그 약을 조심스레 삼킨다. 어쩌면 다시 삼킬 수 있게 된 것도 이 약은 꼭 삼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네 번에 걸쳐 삼키는 일이 불편하지 않다

 

여섯 번 내지 여덟 번을 시도해야 했던 시절엔 불편하기도 했고, 좋지 않은 상태라고 여겼지만.

 

때때로 손바닥에 올려놓은 약을 바라보며 공동에 잠기는 일을 제외하고, 그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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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epu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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