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가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갑자기 결혼이라니.

 

조는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시니컬한 사람이다. 모든 일이 헛헛하고 지루하고 지겨운 냉소주의자, 그게 바로 조다. 스몰톡을 혐오하고 최소한의 말만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드문 젊은이였다.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간섭을 지독하게 싫어해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입학을 1년간 유예하고 닥치는 대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시체닦는 일도 포함되어 있음) 해 돈을 모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기숙사 의무 기간 동안 좁아터진 방에서 죽으면 물에 입만 동동 뜰 것 같은 천진한 동급생들과 이를 악물고 같이 지내며 역시 다양한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조는 기숙사를 탈출해 작은 스튜디오를 얻어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다. 조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며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진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기숙사를 나온 조는 정말이지 누군가와 집을 나눠 쓰고 싶지 않았다. 작지만 깔끔한 스튜디오는 조만의 성이고 조의 영역이었다. "팔다리가 잘리는 느낌이 든달까." 조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만큼 타인의 선 안으로 들어가는 일도 없었다.

 

 

조가 사회 부적응자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신의 영역이 지켜지는 한 조는 썩 괜찮은 친구였다. 영역과 선에 대한 관념이 확실한 만큼 배려심이 깊었고 근면했으며 냉소적인 사람 특유의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도 제법 만나본 것으로 안다. 이별의 이유는 대체로 영역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고. 이런 저런 일과 경험을 쌓으며 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조는 원하는 회사에 취직해 유능한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썩 괜찮은 투룸으로 자신의 성을 옮겨갔다. 조의 성향이 조의 성격을 만들었고, 조는 조 자신만으로 그의 성 안에서 부족함 없이 안온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 조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랑은 맞지 않는 제도야." 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생활과 공간을 나누고 양보하는 게 요점인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조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물론 동거도 조의 연애라이프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고. 누구도 조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조라는 사람을 규정짓는 핵심요소에 반발해서 무엇 하겠는가? 정말이지 '너도 별 수 없을걸' 따위의 말은 조의 삶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렸을 터였다

 

 

그런 조였다. 그런 조가, 그랬던 조가.

 

 

"어떻게 된 일이야? 미안. 축하한다는 말이 먼저였어야 하는데."

 

나는 얼떨떨함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 이해해. 네 반응이 맞아. 지금까지 누구보다 나를 옆에서 가까이 본 너니까."

 

조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말해봐. 축하해."

 

"고마워.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조가 말들을 입속에서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구태의연한 말들, 예를 들면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을 지금까지 못 만나본 것 같아." 따위의 말이 나오지는 않기를 바랐다. 결혼을 결심했다 해도 조는 조니까 조처럼 남아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어. 케이트는 나와 성향이 같아."

 

"그렇다면 더 이해가 안 돼. 각자 따로 살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되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맞아.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조의 설명을 기다렸다.

 

"케이트와 나는 같은 플랫에 각자 집을 얻어서 살 생각이야."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공간을 나누고 싶진 않지만, 우리는 서로 가족이 되고 싶다는 데 동의했어."

 

조의 말에 나는 내가 생각보다 보수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활을 나누지 않는 가족이 성립 가능한가? 나는 문득 떠오른 내 생각에 스스로 충격을 받아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들여다봐야 했다. 반드시 함께 살아야 가족이라는 개념에 반발하면서도, "원치 않는 공유"마저 가능해야 가족이 아닐까란 생각이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 

 

 

 

 

 

 

 

 

 

 

 

 

 

Posted by orangepudding
,

 

 

술에 취했을 때 가끔 내뱉은 아주 아주 개인적인 사항들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아찔하고 현타와서 술을 멀리하게 된다.

 

한번은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술에 취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이후로 '나 술 취했음'이라는 말을 할 정도까지만 취한다. 정말 취하면 '나 생각보다 안 취했음'이라고 판단하게 되고 그렇게 말한다. 

 

후회하는 말의 내용은 썼듯이 아주 아주 개인적인 일들이므로 여기에서 밝힐 수 없다.

 

 

술이 들어가지 않는 한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제정신인 상태로 후회하는 말들도 물론 있다.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대로 한 말들이 그렇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도 한 박자 늦게 깨닫게 되는, 확신에 찬 헛소리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수치스럽다.

 

 

분을 못 이기고, 감정에 매몰돼 던진 말들도 있지만 그런 말들 중에서 특별히 더 후회스러운 말들은 별로 없다. 화가 나는 데엔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근거해 하는 말들은 후회하지 않는다. 격앙돼 막 뱉지는 않는 편이다.

 

 

말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특히 술을 마셨을 땐, 취하지 않았더라도, 그런데 나는 맥주 첫 모금에 취하기 때문에 취하지 않는 게 불가능하긴 한데, 말들을 여러번 다시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꼭 할 만한 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Posted by orangepudding
,

 

 

일단 작업물 백업한 USB를 주머니에 넣고, (책상 눈앞에 있음)

 

실은 CD를 가지고 나오고 싶다.

 

한두장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가지고 나오느냐가 문제고, 그게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논의까지는 갈 필요가 없는 듯하니, 어쨌든 CD들이다.

 

CD에 차등을 둘 것도 없다. 내 CD는 알파벳 순서로 정리돼 있고 (가요 CD는 포기) 가감없이 차등없이 소중하다. 다 가지고 나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상황에 처해졌을 때 큰 가방을 열고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넣다 보면 - 손에 잡힐 때 이미 알파벳을 보게 될 터이기 때문에 어떤 열일지 의식하게 될 것도 문제 - 선택을 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다면 몇 장 먼저 챙길 CD들이 생각나긴 한다. 내 CD들은 특별히 희귀할 건 없지만 중학생 때부터 모았기 때문에 옛 시절의 컨템포러리라고 하면 이미 이 시대에선 돈 들여 살 수 없다. 사실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설명이고, 그냥 내 시절의 기록이기 때문에 내겐 값어치를 매길 수가 없는 자산이다. 다 가지고 나오지 못하면, 그래서 소실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 다시는 수집을 시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컬렉션을 만들듯 모으지 않았다. 그럴 돈도 없는 시절부터 정말 듣고 싶은 음악들을 한장 한장 사면서 컬렉션이 만들어졌다. 내 CD의 가치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다.

 

 

 

Posted by orangepud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