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라는 사람이 있다. 둘은 부부이고, B가 외도를 한다. 이 경우 이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대개는 쉽게 B의 유책을 물을 수 있지만, 이 회고록에서 B는 A에게 책임이 있다고 당당하게 소를 제기한다. 흔해빠진 '네가 안 놀아주니까 내가 마음이 딴 데 간 거야' 류의 책임전가와는 조금 다르다. 최초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B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을 피해자로 재규정하게 되는 과정이 A의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것 같지만, A가 결국 지적하는 것은 B의 아전인수격 태도와 뻔뻔함이다. A는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세우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그는 분노 대신 비웃음과 희화화를 서술방법으로 택함으로써 사건이 지니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B를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는 데 성공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감성수치를 겪게 하는 B를 편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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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죽음이 기억나는 첫 번째 죽음이다. 내 기억은 거의 대부분 여섯 살에 시작되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도 기억이 난다. 교통사고였고, 어른들이 모여 있었고, 아버지가 이상한 옷을 입었었고, 관이 산으로 갈 때 나를 이모들이 맡아서 나는 산에 가지 않았다. 감정은 온통 낯섦 뿐이었다. 나를 보면 웃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보채지 않았고 커다란 이벤트처럼 그 첫 장례식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최근에 기억나는 죽음은 어느 아이돌그룹 멤버의 죽음이다. 나는 그 그룹도 그 멤버도 잘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티비에서 그를 보았을 때 활짝 웃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늦은 새벽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가슴 아팠다. 너무 어리고 너무 푸른 죽음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했다. 그 지난한 고통의 과정을 상상하게 했다. 되새기게 했다. 그의 팬들을 생각하면 또다시 슬퍼졌다. 

내 인생 첫 번째 죽음으로부터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내 안에 쌓인 셀 수 없이 많은 앎들이 상실과 고통에 대해 생각할 줄 알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자주 생각했다. 여섯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니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도 자연스럽게 달라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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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무서워서 신체반응이 나타났던 적은, 정말로 무릎이 떨리고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적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티볼리 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탔었을 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theme park로 유명한 그곳은 규모는 작지만 자자한 명성의 놀이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두 개를 타보고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게 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 놀이기구가 심각하게 아찔한 건가 구분하지 못했다.

특히 앉아서 20분 동인이나 구경하면서 고민했던 두 번째 놀이기구를 타고 나와서는 다리가 풀리고 어질어질해서 같이 탔던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괜찮으냐"고 물어봤더랬다. (그 애들은 재빨리 다시 타러 입구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타기 전에 20분, 타고 나서 20분을 그 놀이기구 앞에 앉아 있다 왔던 기억이 있다.

좀 더 어렸던 시절 나는 새로운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면서도 도전하는 일에 짜릿함을 느끼는 쪽이었는데, 티볼리 이후로는 내가 너무 좁은 세계에서 일률적인 놀이기구만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됐다. 이후 에버랜드에 가서 가장 유명한 롤러코스터를 1시간이나 기다려서 탔을 때도, 대단히 무섭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또 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섭거나 두려웠던 시간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회전목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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