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은 좋아하는 음식들을 한 상 가득 모아 모두 다 조금씩 맛보고 싶은데, 그 좋아함과 맛있음에 감정이 담길 수 있을까 싶다. 마지막 식사라는 걸 알아서 맛있게 먹기보다는 마지막 식사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맛을 못 느낄 가능성이 더 큰 타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도 어쨌든 시리얼 한 그릇 따위로 식탁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매운 떡볶이랑 김치전이랑 치즈 토핑을 추가한 페퍼로니 피자랑 밥과 된장찌개, 구운 돼지고기, 시래기나물, 깻잎순나물, 콩나물, 멸치볶음, 오이지, 익숙한 맛의 김치, 상추를 비롯한 다양한 쌈채소, 쌈장과 갈치속젓, 근사한 맛이 나는 진짜 사워도우랑 질좋은 버터, 크림이 가득 든 도넛, 요거트 아이스크림, 시원한 라거맥주, 고급 샤블리 한잔과 구성감이 느껴지는 비싼 피노누아 한잔.....

 

계속 추가할 수 있지만 문득 식탁이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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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5분 여의 시간.

난 엔딩 크레디트를 다 보고 나오는 타입이다. 내게 영화는 하나의 경험이다. 시간때우기용이나 심심풀이로 영화를 관람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일종의 작은 성취감이 있다. 어느 대중예술가가 2시간으로 압축한 작품을 감상한다는 의미가 크다. 엔딩 크레디트는 실제로 여러 예술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올라가는 것이라 그들의 이름을 읽으며 그들이 기여한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작품의 마지막 여운을 정리하기도 한다. 엔딩 크레디트까지 다 보고 정말로 나가라는 표시로 불이 켜지는 순간, 작은 뿌듯함을 느낀다. 그 순간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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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다가 마네킹이 입고 있는 그것을 본 순간 이현은 그것을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현이 그 동안 찾아 헤맸던 디자인을 완벽하게 구현한 제품이었다. 이현은 끌리듯 매장에 들어가 다른 색상이 있는지 물었다. 블랙이면 딱일 텐데. 그러나 제품은 스킨톤과 마네킹이 입고 있는 새빨간 색, 단 두 가지만 출시 중이라고 했다. 스킨 색상의 제품을 보니 디자인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과감한듯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 제품은 유색이어야 했다. 빨간색 브라는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제품은 강렬한 레드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색상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착용감 또한 최고였다. 어쩌면 지금 이 물건이 너무 마음에 들어 모든 게 좋게 느껴지는 현상일 수 있지만, 그만큼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면 구입해야 맞다. 이현은 새 제품을 문의한 뒤 직원이 비닐에 싸여 있는 새 제품을 뜯어 팬티까지 그대로 착용하고 피팅룸을 나왔다. 옅은 색상의 이너 뒤로 속옷이 비쳐 보였다. 이제부터는 이 속옷에 걸맞는 옷을 찾아야 한다. 비슷한 붉은 톤의 짧은 드레스면 좋을 것 같다. 속옷 세트 값을 치루며 이현은 다음 쇼핑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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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암은 정복되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가 단상에 오르자 연단을 둘러싼 수천 명의 군중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암 치료제 개발을 선언하고 난지 어언 14년, 박사는 마침내 모든 투자자들과 무엇보다 암환자들을 가슴벅차게 할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다. 다음으로 이어진 상용화에 필요한 과정과 시간 따위에 관한 설명은 환호성 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중요한 건 오로지 치료제가 실제로 개발되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사실 그날의 연설은 그것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박사가 연설 중간에 낚아채여 단상에서 끌려내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한창 "킹"이라고 별명 붙인 약의 구체적 효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스코필드 박사의 아버지인 제임스 스코필드 씨의 부고가 전해진 것은. 이 기사는 스코필드 박사가 소식을 전해들음과 동시에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스코필드 박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 추정은 박사 스스로도 하고 있었지만, 관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도 갑작스러웠다. 어제까지도 멀쩡해 보이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제임스 스코필드 씨가 간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0분 후에 새로 편집된 2보는 이 사실을 담고 있었다. 군중 사이에서 스코필드 박사의 아버지가 암을 앓다가 죽었다는 뉴스가 퍼져나가는 데에는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스코필드 박사는 아버지의 죽음에 경악하거나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군중들에게 아버지가 암보다는 노환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주장했지만, 소식이 전해진 이후 그 누구도 박사의 해명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뻔뻔한 거짓말쟁이였다. 곧 소란이 일었고 성난 군중은 연단을 부술 기세로 달려들었다.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해명하고 싶어 하는 스코필드 박사를 단상에서 억지로 끌어내렸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이끌려갔다. 구두 한 짝이 벗겨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차에 태워졌다. 군중들로부터 멀어졌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을 차에 태운 이들과 운전하는 사람 모두 안면이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이제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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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은 잘생긴 옆집 청년을 눈여겨본다.

 

대학생인 그는 옆집의 2층 방 한 칸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키가 크고 기름한 눈매는 끝이 살짝 쳐져 있어 선한 인상을 풍긴다. 아침마다 운동을 나가느라 파머스마켓에 장을 보러 가는 수잔과 자주 마주친다. 마주칠 때마다 깍듯이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그의 이름이 데이빗이라는 사실을 수잔은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에서 짐을 들고 있는 그녀를 보면 데이빗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 후다닥 달려와 그녀의 짐을 들어준다. 그래봤자 장바구니에 든 당근이나 양파, 샐러리와 몇 가지 종류의 통조림 정도라 무겁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의 눈에는 수잔이 짐을 꼭 들어주어야 할 만큼 나이들어보이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될까말까 한 청년에게 오십대 후반의 여자는 엄마뻘 그 이상일 테니까.

 

오늘도 데이빗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오늘은 들어줄 짐이 없어 사뭇 아쉬워 보이기까지 하는 데이빗의 표정이 약간의 어색함과 수줍음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수잔은 알아차린다. 아무리 옆집에 산다지만 참 자주 마주친다고 이야기를 건네본다. 데이빗도 동의를 표한다. 두 사람이 또래였다면 이를 빌미로 데이트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수잔은 생각한다. 적어도 수잔은 데이트 신청에 예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만큼 데이빗이 마음에 든다. 흔한 호감을 주는 사람 이상이다. 수잔은 데이빗이 주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단순히 착한 성정의 젊은이에게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넘어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수잔은 시간이 괜찮으면 차를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동안 도와준 일에 대한 사소한 보답이라고 말이다. 데이빗은 일이 초 정도가 지난 뒤 감사히 초대를 받아들이겠노라고 답한다. 안될 것 없다는 태도가 느껴져 수잔의 마음에 걸린다. 이왕이면 기꺼이, 기쁨만으로 같은 뉘앙스이기를 바랐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라지 않는다. 집에 다다른 그들은 데이빗이 가방을 방에 놓고 오겠다고 말해 잠시 헤어진다. 수잔은 늘 말끔하게 정리돼 있는 거실을 한번 둘러보고 주방으로 가 제일 좋은 찻잔을 찬장에서 꺼낸다. 품질이 좋은 찻잎통을 꺼내고 찻잔과 세트인 섬세한 문양의 주전자를 내린다. 그때 벨 소리가 들린다. 수잔은 미소 지으며 현관으로 나간다.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데이빗의 환한 웃음에 수잔은 한순간 얼어붙어버린다. 수줍은듯 정중하면서도 친근한 청년의 표정이 몹시 낯익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수잔 그녀의 얼굴이었다. 웃을 때 휘어지는 눈썹의 모양과 색깔이 그녀 자신의 것과 무척 닮아 있다는 데 생각이 닿자, 그동안 느껴왔던 친근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 깨달음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데이빗은 누구일까? 이토록 가까이 느껴지는 젊은 타인은 수잔에게 누구일 수 있을까.

 

꽃다발을 받아 허리가 긴 화병에 멋들어지게 꽂고 데이빗에게 집을 구경시켜주며 수잔은 마음 깊숙한 곳에 봉인해두었던 하나의 가능성을 끄집어낸다. 식탁에 마주하고 앉아 능숙하게 차를 우려내면서도 수잔의 머릿속은 다른곳을 헤매고 있다. 이렇게 정식으로 우려먹는 차를 대접받기는 처음이라며 찻잔을 소중하게 쥐는 데이빗의 섬세한 몸짓이 그녀의 추정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 하다. 잘생기고 인정 많고 배려심 깊은 이 완벽한 청년은, 웃는 모습이 그녀 자신을 꼭 닮은 이 어린 남성은, 어쩌면 수잔의 손자일 수 있다.

 

수잔이 열일곱 살을 맞이한 그 여름,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너무 조그마해 모든 것이 바스라질 것 같았던 작디작은 딸아이를 책임감 넘쳐보이던 다정한 부부에게 입양보냈다. 그후로 그 아이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수잔은 난임이 되었고, 결혼 후에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남편 피터는 아이를 원했고, 그녀를 떠났다. 수잔은 피터를 원망하지 않았다.

 

데이빗은 수잔이 남몰래 엠마라고 이름지어 불렀던 딸아이의 아들일 수도 있다.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자기 안에서 나온 그 작은 아기를 딸이 아닌 어떤 이름으로 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안의 엠마가 양부모 밑에서 의젓하게 자라나 아이를 낳았다면, 아들을 낳았다면 꼭 데이빗 같지 않을까, 그녀는 생각한다. 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가까운 느낌은 핏줄의 끌림이 아니었겠느냐고, 자기를 마주한 채 차의 향을 느끼고 차를 음미하는 청년을 보며 수잔은 스스로를 설득한다. 

 

"데이빗."

 

수잔은 눈이 동그래지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자신에게 손자가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리라, 그녀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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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은 유행 중인 숏 쇼츠를 무척 입고 싶었다. 친구들도 모두 숏 쇼츠가 그녀에게 잘 어울릴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에린은 길고 쭉 뻗은 멋진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쇼츠에 잘 어울릴 하이힐도 한 켤레 사 두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직 고등학생인 에린이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그렇게 "선정적인" 옷을 입게 내버려둘 만큼 개방적인 가치관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에린은 엄마아빠만큼 보수적이고 꽉 막힌 고집불통은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도 숏 쇼츠를 두고 엄마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 에린은 그대로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모아둔 용돈과 하이힐을 들고 나온 에린은시내로 나가 최신 유행의 쇼츠를 쇼윈도에 멋지게 전시해둔 편집매장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점찍어두었던 쇼츠를 사버렸다. 이대로 엄마아빠에게 끌려다니다간 나이를 먹기 전엔 쇼츠를 입어보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사이 유행이 지나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

 

숏 쇼츠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은 에린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너무나 예뻤다. 매장점원도 으레 떠는 호들갑이 아니라 진심으로 에린을 칭찬했다. 적어도 일을 저질러버린 에린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에린은 위풍당당하게 옷가게를 나와 공중전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에린은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모두의 눈길이 그녀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와 유독 짧은 최신 숏 쇼츠에 가 닿았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차츰 신경이 쓰였다. 쇼츠가 말려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바짓단으로 손길이 가기도 했다. 

 

"아가씨,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새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던 에린은 젋은 남자 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OO매거진 기자라고 말하며 명함을 내밀었고, 혹시 숏 쇼츠를 입은 그녀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왔다. 길거리 패션을 다룬 칼럼 꼭지에 그녀의 사진을 쓰고 싶다는 거였다. 에린은 받아든 명함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그녀를 온통 뒤흔들었다. 이 유명한 잡지에 사진이 찍혀 기사에 실린다면 그녀의 모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여타 후보들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은 자명했지만, 갑작스레 캐스팅 제의를 받은 열일곱의 그녀가 그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 순간 문득 에린은 오늘 그녀가 하루종일 느꼈던 찬사가 진실이었는지 아니면 흥분한 그녀의 과민반응이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일종의 모델료로 다소 엉뚱한 것을 요구해보았다. 그들이 정말 자신의 사진을 칼럼에 적합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면 내어주지 못할 것도 없는 물건이었다. 기자들은 에린의 요구에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꽤 의외지만 오케이라는 신호였다. 에린은 처음으로 숏 쇼츠를 사서 입은 날 꽤나 과감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다. 엄마아빠가 보면 기절할 컷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받았고 어쩌면 아주 아주 오랫동안 남을 기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에린은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동차 바닥 깔개 두 개로 그녀의 앞모습을 가린 채 말이다. 자동차의 왕국 디트로이트, 기자들의 차는 마침 에린의 부모님과 같은 차종이었고,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에 뽑은 신형 모델이라는 점이었다. 최신형이라고 해도 바닥 깔개가 다를 건 없었다. 대학생인 오빠 바비가 부모님의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앞좌석의 바닥 깔개 두 개를 버리고 돌아온 뒤 - 토사물 때문이었으리라고 에린은 추정했다 - 아직 오빠는 새 깔개를 채워두지 않았다. 완전히 비틀어져 버린 사이드미러 수리비를 마련하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엄마아빠는 아연실색한 눈으로 깨끗한 자동차 바닥 깔개와 그 아래로 보이는 에린의 정강이와 하이힐을 바라보았다. 에린은 조금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활짝 웃는 표정을 꾸몄다. 모델로 데뷔한 그녀가 아니던가!

 

 

 

short shorts, Detroit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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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기 전에 그게 최고로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말하자면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골라봐야 한다는 것 같다.

 

가장 필요한 일, 그래서 좋은 일은 아마 성취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답이 되려면 그 직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품을 수 있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허무해지거나 냉소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게 중요할 듯 하다. 온전히 성취를 누릴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어차피 가장 좋은 일이라는 건 찰나의 즐거움이다.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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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은 구체화시키지 않는 법이다.

 

지금 생각으론 'bad thing'들이 동시에, 연달아 일어나는 게 가장 나쁜 일이 될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대비나 준비라는 것이 그렇게 소용될까 싶다만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나쁜 것들이 닥쳐오는 그림은 최악이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생각은 하되, 글로 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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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만화책을 보고 고길동이 이해되었을 때.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때 생경하게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서른 살이었다. 

애장판으로 소유 중인 둘리 만화책을 오랜만에 펼쳐들었다. 대학원 여름방학 기간에 잠깐 나왔던 터라 한글 활자가 절실했는지 매일매일 책이나 만화책을 섭렵 중이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아버렸다.

아, 고길동이 화를 냈던 이유가 있구나.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는구나.

 

이 깨달음이 절실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가 그 얼마전까지도 대체 고길동이 둘리에게 왜 그렇게 야박하게 구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했을 때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착하고 희동이도 잘봐주는 둘리를 왜 그렇게 구박할까, 라고 말했었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길동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만화책을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아니지, 그게 아니게 되었다. 둘리와 친구들은 말썽쟁이였고 일일히 나열할 수 없는 말썽을 저질렀다. 그리고 어렸던 시절엔 절대 생각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 마음이 쓰였다. 바로 고길동이 둘리를 떠맡을 이유가 없다는 것. 그 깨달음은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는데, 어렸을 땐 그들의 동거가 그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스르르 고길동을 이해해버렸고, 그때 비로소 내가 둘리만을 오로지 둘리만을 마음에 품을 수 없게 된 시절이 도래했음을 인정했다. "어떡하지"란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 빤히 보이는 에피소드들 앞에서도 어쩜 그렇게 둘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었는지, 그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어느 단계를 넘어왔음을 알았다. 

 

내겐 대단히 인상적인 순간이자 인생의 한 시기였다.

서른 살의 그 여름. 이르든 늦든, 고길동의 수난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던 그때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님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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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하고 좀 뻔뻔하고 자기 뜻대로 일이 돌아가는 것을 당연시하고 자신만만하다.

내키면 귀염을 떨고 애교도 부리지만 내키지 않으면 아무리 달래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애정을 갈구하고 이를 숨기지 않기 때문에 도도해 보여도 그저 사랑스럽다.

자기가 귀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게 줄 마음의 영역이 아주 크다.

 

그래서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그저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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