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질문인데, 당연히 록스타가 되고 싶다.

 

노벨상을 타는 것은 바랄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겠지만, 록스타가 됨으로써 바랄 수 있는 바는 한계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둘을 비교해서 저울에 달아 기우는 쪽을 골라내는 식으로 선택한 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록커도 내 한 시절을 규정지을 수 있는 장래희망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보다는 록스타들로부터 훨씬 큰 영향을 받은 삶을 살아왔다. 물론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이 알게 모르게 내 생활에 미친 영향을 내가 다 측량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록스타는 내 삶의 길잡이였고 우상이었다. 그들의 음악이 삶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들 때문에 많은 시간 행복했고, 다양한 감정을 향유할 수 있었다. 날 웃게 만든 것도 날 울게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 내가 구축한 인간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커다란 영향력이 내가 노벨상 수상자보다는 록스타가 되고 싶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냥, 멋있잖아? 인류에게 아름답고 멋진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좋은 일"인가. 부와 명예, 스캔들과 사건사고 등은 부수적인 사항이다. 명예로 따지면 노벨상 수상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 동안 만날 수 있는 - 직접적으로든 음악을 통해서든 - 록스타야말로 내겐 더욱 선망적이다. 나는 노벨상 수상자보다는 록스타가 되겠다.

 

 

Posted by orangepudding
,

 

 

돈을 발견했다는 건 내 돈이 아니라는 소리고, 주인이 있는 돈이라는 소리다. 보물섬을 탐험하다 가라앉은 배에서 나온 금덩이 따위를 발견한 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나는 이런 일에 얽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경찰서에 가져다주거나, 그마저도 귀찮으면 그냥 내버려두고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돈을 지나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게 될 수도 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눈앞에 돈이 무작정 떨어지는 건 내가 바라는 행운이 아니다. 행운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큰돈과 얽히는 일은 불운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Posted by orangepudding
,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되돌릴 각오를 하고 되돌릴 수 있는 길까지 쭉 따라갔는데, 알고 보니 그 길이 목적지에 더 빨리 닿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머리를 기르기만 하다가 어떻게 나와도 좋다는 심정으로 머리를 짧게 잘라 버렸는데 그 커트 스타일이 나에게 베스트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머리를 자르고 만나는 사람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머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해주었다. 홧김이든 뭐든 일단 잘라보지 않았다면 영영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주 늦게 발견하게 되었을 진실.

 

마음에 드는 옷을 샀는데, 가게 직원이 사이즈를 잘못 넣어주어서 바꾸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가게는 집에서 가깝지 않아서 차를 타고 사오십 분은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날을 잡고 길을 달려 옷가게를 방문했는데, 새로 나온 옷 중에 오랫동안 찾아왔던 스타일의 옷이 있었다. 다시 올 기회가 없었다면 그런 옷이 있는 줄도 몰랐을 터였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지장 없는 삶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니까 마음에 드는 옷이란 게 존재하는 게 아닐까.

 

 

 

 

 

 

 

Posted by orangepudding
,

 

 

그건 정말 실수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서둘러 화장실로, 매점으로 달려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사이를 허겁지겁 뛰다시피 걷다가 그만 책상 옆에 걸어둔 누군가의 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라고 묻는 아이들도 내가 후다닥 일어나 무릎을 문지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짓자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바닥에 긁힌 무릎에는 긴 찰과상과 그 끝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소독을 하러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 다리가 걸린 가방의 손잡이 한쪽이 달랑달랑 떨어져 나가 있었다. 순간 나는 오싹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넘어져 다친 데다가 남의 가방까지 망가뜨려 놓은 것이다. 나는 몹시 억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자리를 보니 가방은 가영의 것이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데다가 말도 거의 섞어본 적 없는 아이였다. 내가 잘못한 상황이었지만 잘못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재수없다는 생각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영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는 상상을 하자 아득했다. 나는 그런 입장에 서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그 열망만이 내 온 몸을 지배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줄지어 서 있는 책상은 거의 비어 있었고,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제 일에 열중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잡이가 떨어진 가방을 집어들고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가방을 다시 걸었다. 가방은 삐뚜름하게 걸렸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아이는 없었다. 나는 무릎을 살펴보는 시늉을 하면서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가서는 수돗물로 상처 부위를 닦았다. 거울을 보았다. 내 표정도 마음과 같았다. 나는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나도 가영도 좀 재수 없는 날이었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을 때쯤 종이 울렸다. 나는 나보다 앞 열에 앉은 가영을 자연스럽게 바라보았다. 가영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쉽게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애는 크게 당황한듯 보였다. 옆에 앉은 아이를 붙잡고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가영의 짝궁은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선생님이 들어왔는데도 가영의 신경은 온통 가방 손잡이에만 닿아 있었다. 그깟 가방 손잡이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가영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수업 시간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가영은 수업 종료와 함께 가방을 끌어안고 자세히 살펴보곤 어이없게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변 아이들이 가영에게 모여들어 사정을 전해듣고 가영을 위로했다. 누군가가 가방을 망가뜨려놓았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아이는 가영을 빼놓곤 없었다. 아무도 가영의 가정과 추론을 뒷받침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 보였다. 조금 미안하다는 감정이 올라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자백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과를 하고 보상이라도 하려면 손잡이가 떨어져나갔던 그 시점에 했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와 용서는 불가능해진다는 판단이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시간을 계속해서 흘려보냈다. 가영의 흥분과 울음도 잦아들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란 소리다.

마음에 거리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귀가했다. 아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Posted by orangepudding
,

 

 

존재하지 않는다.

100년이 지나기 전에 지구에 위기가 닥칠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사는 도시도 소멸되기 쉽다.

나는 지구가 서서히 스러져가는 모습을 나이든 눈으로 지켜보겠지.

지금 이미 시작된 것도 같다.

 

 

 

 

 

 

Posted by orangepudding
,

 

 

추행.

어렸을 때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 일을 알 만한 나이가 됐을 때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서야 아, 그때 그것이 그런 짓이었구나,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됐다. 다른 아이들도 많이 있는 교육의 현장이었는데,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고통스럽게 뒤졌기를 바라본다

 

 

Posted by orangepudding
,

 

A와 B라는 사람이 있다. 둘은 부부이고, B가 외도를 한다. 이 경우 이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대개는 쉽게 B의 유책을 물을 수 있지만, 이 회고록에서 B는 A에게 책임이 있다고 당당하게 소를 제기한다. 흔해빠진 '네가 안 놀아주니까 내가 마음이 딴 데 간 거야' 류의 책임전가와는 조금 다르다. 최초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B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을 피해자로 재규정하게 되는 과정이 A의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것 같지만, A가 결국 지적하는 것은 B의 아전인수격 태도와 뻔뻔함이다. A는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세우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그는 분노 대신 비웃음과 희화화를 서술방법으로 택함으로써 사건이 지니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B를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는 데 성공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감성수치를 겪게 하는 B를 편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Posted by orangepudding
,

 

 

여섯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죽음이 기억나는 첫 번째 죽음이다. 내 기억은 거의 대부분 여섯 살에 시작되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도 기억이 난다. 교통사고였고, 어른들이 모여 있었고, 아버지가 이상한 옷을 입었었고, 관이 산으로 갈 때 나를 이모들이 맡아서 나는 산에 가지 않았다. 감정은 온통 낯섦 뿐이었다. 나를 보면 웃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보채지 않았고 커다란 이벤트처럼 그 첫 장례식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최근에 기억나는 죽음은 어느 아이돌그룹 멤버의 죽음이다. 나는 그 그룹도 그 멤버도 잘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티비에서 그를 보았을 때 활짝 웃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늦은 새벽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가슴 아팠다. 너무 어리고 너무 푸른 죽음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했다. 그 지난한 고통의 과정을 상상하게 했다. 되새기게 했다. 그의 팬들을 생각하면 또다시 슬퍼졌다. 

내 인생 첫 번째 죽음으로부터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내 안에 쌓인 셀 수 없이 많은 앎들이 상실과 고통에 대해 생각할 줄 알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자주 생각했다. 여섯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니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도 자연스럽게 달라진 것뿐이다.

 

 

 

 

 

 

Posted by orangepudding
,

 

 

문자 그대로 무서워서 신체반응이 나타났던 적은, 정말로 무릎이 떨리고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적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티볼리 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탔었을 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theme park로 유명한 그곳은 규모는 작지만 자자한 명성의 놀이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두 개를 타보고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게 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 놀이기구가 심각하게 아찔한 건가 구분하지 못했다.

특히 앉아서 20분 동인이나 구경하면서 고민했던 두 번째 놀이기구를 타고 나와서는 다리가 풀리고 어질어질해서 같이 탔던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괜찮으냐"고 물어봤더랬다. (그 애들은 재빨리 다시 타러 입구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타기 전에 20분, 타고 나서 20분을 그 놀이기구 앞에 앉아 있다 왔던 기억이 있다.

좀 더 어렸던 시절 나는 새로운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면서도 도전하는 일에 짜릿함을 느끼는 쪽이었는데, 티볼리 이후로는 내가 너무 좁은 세계에서 일률적인 놀이기구만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됐다. 이후 에버랜드에 가서 가장 유명한 롤러코스터를 1시간이나 기다려서 탔을 때도, 대단히 무섭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또 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섭거나 두려웠던 시간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회전목마다.

 

 

 

Posted by orangepudding
,

describe exultation.

go and get it 2023. 5. 24. 07:16

 

 

오랫동안 노력하고 바라왔던 일을 이루었을 때의 가슴 벅찬 떨림, 마음이 따스하게 부풀어오르는 너그러움과 여유, 무엇있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의 충전, 포근한 담요와 곱고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이 몸에 닿을 때의 촉감, 거울을 보지 않아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자신의 눈을 알고 느낄 수 있는 능력, 햇빛이 내리쬐는 길도 비오는 거리도 당장 활보하고 싶은 욕망, 내 몸의 실루엣이 금테 두른듯 단단해지고 안전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느낌.

 

 

Posted by orangepudding
,